가난했던 어린시절 떠올리며 사회적 기업을 통한 복지사회 꿈꿔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도 크게 나아질 건 없었다. 이가 너무 아팠지만 치과 문턱도 밟지 못했다. 당시 매년 등록금을 내기 전에 신체검사를 할 때면 이를 치료하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 치료에 거금을 투자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계속 한쪽으로 씹어서일까, 입 주변 주름도 한쪽으로만 나면서 얼굴이 달라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대에 가서야 군의관 후배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로 근무한 지 10개월 만에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가 되어 모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갔을 때 잘 정비된 사회 복지 제도에 매료됐다. 특히 장애인 제도가 잘 돼 있어 미국에서 관련법을 한꺼번에 복사해 한국으로 갖고 왔다. 정치를 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때였지만 연방정부와 납품 계약을 맺은 업체는 무조건 장애인을 고용을 해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 정치, 진영도 하는데 내가 못하겠냐?

암울했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며 기피하고 두려워했던 그 길 위에 2000년 4월 처음으로 서울 용산구에 입후보하며 들어섰지만 결국 낙마했다. 지금보다 더 돈으로 하는 정치가 횡했했던 때, 평생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산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는 안 어울린다고 했다. 그래도‘나 같은 사람이 잘 돼야 정치가 잘 되는 것 아닌가' 위안을 삼았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는 "정치하다가 어려우면 진영이를 떠올려라, 진영이도 하는데 내가 못 하겠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서울의 한복판 용산. 높게 들어선 동부 이촌동 빌딩숲 옆으로 쪽방 촌이 다닥다닥 자리한, 빈부격차를 극명히 보여주는 지역이다. 쪽방 촌을 직접 방문했다. 기초수급자 수급액 30-40만원으로는 쪽방촌 월세와 약값을 충당하기도 버거웠다. 이들이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가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고 더 한 단계 위로 올라가 임대주택에라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봤다.

다문화센터에서 필리핀,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의 자녀가 우리사회에서 공부하며 뿌리 내리고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말도 못 배우고 결혼 이민자들은 배우자에게도 차별을 받고 있었다.

탈북자들을 만났다. 제발 새터민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냥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대로 방치하면 엄청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인권 차원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래가 우리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기에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 생각됐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민간의 자본과 함께 무엇보다 스스로 움직이는‘사람’들이 필요했다.

잘 꾸려진 복지단체에도 한계는 있었다. 용산의 복지재단인 상희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원 봉사를 하고 기부도 수십억씩 했지만 영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2006년 지방선거 직후 구청장이 복지재단을 통해 선거운동을 한다고 기부자 100여명을 전부 다 불러 경찰조사를 했고 이후 기부액은 급격히 떨어졌다. 모두 무혐의로 판결이 났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에 일자리를 계속 줄 수 있는’영속 가능한 사업을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바로 사회적 기업이었다.

◈ 사회적 기업, 결국 모든 사람이 하는 일

사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잘 몰랐다. 우선 법부터 만들어야겠다고 봤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가난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그라민 뱅크를 떠올렸다. 2005년부터 준비해 2007년 사회적 기업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 250개 사회적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아직은 부족하다. 앞으로 몇 만 개, 적어도 몇 천개의 사회적 기업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전국에서 양극화가 제일 심각한 용산이 전국의 모범이 되는 샘플이 돼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런 바탕 위에 사회적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올 초에 지방자치단체계 연계된 예비 사회적 기업 ‘더 좋은 세상’이 탄생했다.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는 친환경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연계한 구청에서 취약계층에 일을 주고,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일을 하고 수익이 생기면 그것으로 다시 복지 사업을 하는 것이다. 1석 다조다. 쓰레기를 수거와 분리는 주민이면 누구든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생각만큼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국민들은 알면 스스로 한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100만, 200만 명이 자원봉사를 가지 않았던가. 자치구마다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원봉사를 해달라고 하면 지금도 7,8천명이 신청을 하고 있다. 홍보가 중요한 것이다. 요즘도 사회적 기업을 하고 있는 곳이라면 부산이든 광주든 가리지 않고 내려가 격려하고 배우고 있다.

5만 포기의 김장을 담는 ‘기적’이 이뤄진 것도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경기도 일산의 기부 받은 땅에 직접 심고 가꾼 배추를 수확해 운동장 가득 7,8천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3일 동안 5만 포기의 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 비서실장으로 연을 맺게된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오는 6일 김장 봉사활동에 나서지만 일련의 활동들이 ‘정치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 사회적 기업의 갈 길은 무궁무진하다. 현재 사회적 기업 활동 전문가 등과 협의해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도록 내년 가을쯤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또 사회적 기업이 있는 지역구 의원들이 함께 하는 국회 포럼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의 관심도 높이려 한다.

◈국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사회적 기업의 ‘선순환’은 각 분야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국회를 볼 때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예산안 심사기간의 경우 다른 나라는 적어도 3-4달이 걸리지만 우리나라는 헌법상 90일 전에 정부에서 국회로 제출해 30일 전에 통과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헌법으로 명문화 된 것도 안 지키고 있다.

입법권과 행정감사권이라는 국회의 본질적 기능 가운데 국정감사를 20일만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닌가. 또 예산안을 정치적 볼모로 잡다 보니 제대로 심사가 진행될 리 없다. 어려운 사람을 살피기 위해 이뤄져야 할 예산안 심사는 정쟁 끝에 졸속으로 이뤄져 나중에는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기로 끝나고 만다.

“국회가 바뀌어야 정부도 바뀌고 국민도 바뀌는 것 아닐까요?”

인식의 전환을 통해 포용의 개방 사회로 나가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야 할 일이다. 사람의 통일 뿐만 아니라 갈라진 땅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복지 국가는 최고의 해결책이자 남겨진 숙제가 됐다.

“탈북자가 여기는 정말 복지가 잘 돼 있구나, 이런 나라에 의지하는 게 좋겠구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문화계층에게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문이 열리는 사회는 길을 닦아야 한다고 봅니다.”

슬며시 웃을 때 두드러지는 그의 입가 주름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kangin@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