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에 국경은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기록된 역사에 따르면,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게다가 현대사회의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놀라운 발달이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으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지구촌’이란 같은 동네주민이라는 발칙한 정의도 가능하게 했다. 이제 솔직히 인종을 초월한 파란색 눈과 갈색 눈의 사랑스런 눈 맞춤이 오히려 더욱 로맨틱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의 현실은 아직 차갑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들 로맨틱한 사랑의 결실인 2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동자와 피부의 색깔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동화 속 미운 오리 새끼인 마냥 천덕꾸러기나 놀림거리가 되어버린다. 사실은 다른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김치가 없으면 라면 먹기가 어색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데도, 세상은 이 꼬마들의 마음 속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얼굴 한 번 보자마자 다르다고 하니 마음속 서글픔이 한 가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100여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편견과 차별로 아파하는 다문화 2세들. 그 아이들을 위해 2009년 탄생한 것이 바로 '레인보우합창단'이다. 보잘 것 없어 보였던 한명 한명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노래를 불러 온지 1년. 아이들은 단지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노래하며 꿈을 꾸고, 또 꿈을 나누어 주는 과정이 필자는 너무 궁금했다. 마침 지친 일상 속에서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그들의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그들의 연습 과정과 공연을 취재해 보았다.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4월 21일 수요일 오후 6시 다문화 교육관에서 레인보우합창단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교육관 멀리에서도 단번에 레인보우합창단이 연습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힘찼다. 이들과 만나기도 전인데도 밝고 강한 기운이 기자의 마음을 자극해왔다. 이 또한 아이들과의 운명적 만남 혹은 운명적 취재의 전조였을까. 연습실의 문을 여는 순간, 마침 레인보우 합창단은 ‘거위의 꿈’이란 노래의 후렴구를 외치듯 부르고 있었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터질 것 처럼 두근거렸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연약한 듯 했지만 결국 강했다. 음정과 박자가 맞는 기교 있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그 노래에 진심이 담겨있는 것 처럼 느껴져 그 어떤 노래보다 감동적이었다. 이 순간, 아이들은 노래를 통해 일상 속에서 담아온 슬픔을 토해내듯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곤 스스로 만들어낸 곱고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기쁨을 충분히 흡수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강한 피드백의 과정을 바로 레인보우합창단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었다.
우리도 닭강정에 죽고 못 사는 토종 한국인이에요계속되던 연습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에서 익살스럽게 장난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늘의 간식인 닭강정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모두 참을 수 없는 혼돈의 상태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딱 열 번만 더 하고 간식먹자'고 달래니 연습에 지쳐 무거웠던 입이 반자동으로 동작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열 번의 횟수를 새랴 바빴던 로봇이 되어야 했던 아이들이 드디어 열 번이 되자 숨이 넘어갈듯이 외쳤다.
“선생님 열 번 다 끝났어요! 이제 쉬는 시간이죠?”
쉬는시간 닭강정을 먹으며 신이 난 아이들 ⓒ 정하늘
그리곤 모두 닭강정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치열한 모습이 마치 밀림 속 정글을 연상시키는 한 편, 이를 지켜보던 어른들은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역시 레인보우합창단도 결국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이었다. 그리고 닭강정에 죽고 못 사는 한국의 평범한 꼬마아이였다.
연습 중에 법무부 영상제작을 위한 인터뷰 중인 레인보우합창단원들 ⓒ 정하늘
닭강정을 먹으며 신나게 단원들과 장난치던 유난히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생긴 범철이라는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합창단에서 배운 노래 중 무엇이 제일 좋으냐'고. 아이의 답은 의외였다. “경복궁 타령이요! 지르면 지를수록 속이 시원해져요. 그리고 부르다보면 흥에 겨워서 기분이 좋아져요.(웃음)” 레인보우 합창단은 연습을 하는 내내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꿈을 꾸지요4월 23일 금요일. 레인보우합창단은 큰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제 47회 법의 날 기념식에 초청되어 대검찰청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공연을 할 것도 아니고 취재차 찾았지만, 대검찰청만이 풍기는 근엄한 분위기는 취재를 위해 찾아온 기자를 정문에서부터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심 아이들을 걱정하며 대기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도 추억의 손바닥 놀이었던 ‘에이 비 씨’를 하거나 옹기종기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등 즐겁게 놀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 포즈를 취한 레인보우합창단원들 ⓒ 정하늘
세계 각국의 민속의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조용히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기자에게 오히려 다가와 서로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며 애교를 부린다. 그리고 내심 취재하는 기자의 사진기가 흥미로웠던지 이제는 사진기를 점령하여 무대에 서기 바로 직전까지도 서로의 사진을 장난스럽게 찍어주었다. 저마다 사진 속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무대 뒤에서 긴장한 사람은 기자뿐이었다. 역시 이 아이들은 대인배였다.
법의날 기념식에서 공연 중인 레인보우합창단 ⓒ 정하늘
검은 정장을 입은 무표정의 관객들로 인해 처음 공연장의 분위기는 살벌하리만큼 엄숙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밝은 에너지가 대검찰청을 감돌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 곡인 ‘거위의 꿈’을 듣고 난 후의 기념식장 관객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기에 더욱 짧게만 느껴졌던 공연이 끝나고, 열한 살 꼬마숙녀 새문이에게 소감 한마디 부탁해보았다.
"이런 큰 공연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처음에 다 똑같이 어두운 옷 입은 사람들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우리를 쳐다봐서 무서웠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노래를 모두 끝내고 보니까 또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웃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사람들을 바꾼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행복해요!”
음악의 힘을 믿나요 ?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입 밖으로 나와 존재하기 시작한 말은 결국 인간의 정신을 움직이고 행동을 일으킨다. 그리곤 그 에너지의 방향대로 세상을 바꾼다. 이 놀랍고도 무서운 힘을 가진 ‘말’이라는 에너지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쉽게 표현해자면, ‘말’이 평일이라면 ‘노래’는 주말이라고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중 '거위의 꿈'을 수화와 함께 열창 중인 레인보우합창단 ⓒ 정하늘
레인보우합창단은 이러한 음악의 힘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엔 편견과 차별로 어린 마음에도 속은 이미 만신창이었던 다문화 2세들이 무슨 힘이 있을지 걱정하던 이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레인보우합창단의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편견의 벽을 넘어섰다. 불가능 할 것이라 여겨졌던 그들의 꿈이 어느새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꼬마들은 그저 같은 상처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이 좋아 시작했던 노래를 통해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세상에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일렁이게 하였다.
자, 이제 세상을 바꿀 차례이다. 이제 그들의 꿈대로 ‘다문화’라는 그들의 수식어 보다 한명한명 각자 가진 예쁜 이름들이 먼저 불리워지길 바란다. 그리고 김치를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한국인일 수 있도록. 그들의 노래가 가진 에너지가 편견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글/정하늘(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