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민족이 모여 인천을 밝히다(diversity shines here)"라는 모토를 걸었던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공연 무대. 일본과 중국, 인도, 몽골 등 형형색색의 전통 복장을 한 30여 명의 아이들이 원형으로 빙 둘러서서 고운 화음을 이뤄냈다.

"참 아름다운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위에 사는 난 행복한 사람 아니냐."

아이들은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고,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레인보우합창단원들이다.

2009년 6월 한국다문화센터와 매일경제가 연중기획 `다문화강국 레인보우코리아`의 일환으로 공동창단한 레인보우합창단은 한국 다문화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KBS와 E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편견과 차별을 감내하면서 한국에 적응하려고 애쓰던 합창단 아이들의 애환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했고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레인보우합창단을 통해 한국은 다문화 현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론이 아닌 감성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됐다. 레인보우합창단원의 어머니였던 이자스민 씨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어설펐고 서글펐다. 공연 무대에서 소프라노 파트와 알토 파트가 따로 놀기 일쑤였고 복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다문화합창단이 맞느냐는 의구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창단 초기 연습실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당시 서울 봉천동 명락사 주지 무원 스님의 배려로 절 부속건물에 달랑 피아노 한 대로 둥지를 틀었다. 소프라노와 알토는 분리된 공간에서 연습해야 하지만 칸막이 없이 한 곳에서 악을 쓰듯 노래하다 보니 화음이 엉켰다. 전통의상과 단복, 한복 등 세 종류의 의상을 보관할 옷창고조차 없었다. 그런 난관 속에서도 아이들은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합창단의 이름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2011년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당시 해비치재단으로 불렸던 현대차정몽구재단에서 지원을 약속했고 서울시와 함께 삼성동에 `온드림 다문화가족 교육센터`를 만들어 전용 연습공간을 제공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제대로 된 분리공간을 확보해 연습할 수 있었고 공연할 때 입을 옷이 좀먹거나 손상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생겼다.

날개를 단 레인보우합창단은 갈수록 세련된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고 여수엑스포와 G20정상회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등 굵직굵직한 무대에 초청됐다. 최근에는 빈 소년 합창단 초청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합창 공연을 함께 했다.

레인보우합창단은 올해 창단 5년째를 맞아 격려가 아닌 타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 올해 말이면 합창단의 꿈을 영글게 했던 삼성동 연습실을 비워줘야 할 처지다. 한국다문화센터와 3자 협정을 맺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서울시의 실무자들이 바뀌면서 지원조건을 둘러싸고 이견이 생긴 탓이다. 자칫하면 초창기 떠돌이 신세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김성회 다문화센터 사무총장은 "서울시가 연습실 사용 불허 결정을 내리면서 새로운 연습실을 찾아야 한다"며 "어려웠던 명락사 시절에도 항상 밝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 다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만큼 구김살이 가지 않도록 관심과 배려가 모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순택 경기도자원봉사센터 센터장은 "아이들이 아시안게임 폐막 공연 때 부른 노래대로 자랑스럽고 든든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힘이 되는 우리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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