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강국 레인보우 코리아◆

"지훈아, 이게 `ㄱ`이야. 기역자가 눈코입처럼 참 재미있게 생겼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인 네 살배기 지훈이는 요즘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파워레인져`보다 대학생 누나랑 같이 하는 한글 공부에 푹 빠졌다.

지난주 한국다문화센터 측에서 웅진씽크빅 유아용 한글배우기 그림책과 단어 카드, 한글 놀이판, 퍼즐 등이 가득 담긴 교재 한 박스를 선물받았기 때문이다.

대학생 멘토링을 하고 있는 장아름 양(서울여대 영문학과 2학년)은 양손에 알록달록한 단어카드를 쥐고 살랑살랑 앞뒤로 흔들면서 `지훈이 한글 깨치기 프로젝트`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지훈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카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다.

오토바이가 그려진 카드가 나오면 지훈이는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오토바이를 타는 흉내를 내면서 거실 한 바퀴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지훈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학송(39)ㆍ엘리자(29) 씨 부부는 그 자리에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고 아버지 김씨가 "경찰 아저씨가 지훈이 잡으러 온대"라고 으름장을 놓자 지훈이는 달리기를 뚝 그쳤다.

`ㄱ` `ㄴ`부터 시작해 `ㅇ`을 동그란 안경테와 비교할 무렵 지훈이는 지겨워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장양은 금세 색종이 접기놀이로 전략을 바꿨다.

대학생 멘토링 활동 자원봉사자인 서울여대 장아름 양(오른쪽)이 필리핀 다문화가정 자녀 지훈이에게 `따라하기` 놀이를 가르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장양은 "공부를 조금이라도 어렵게 하면 금세 싫증을 내다 보니 놀이처럼 접근하고 있다"며 "지난 3월에 처음 가정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개구쟁이였던 지훈이가 한글 공부에 열심인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가 고향인 `지훈이 엄마` 엘리자 씨는 지훈이와 함께 덩달아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엘리자 씨는 모국어가 타갈로그어와 영어이다 보니 아들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한국에 오니까 겨울에 추운 것 빼고는 생활 수준이 필리핀보다 훨씬 나아서 만족해요. 다만 어린이집을 보낼 형편이 안 돼 자녀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대학생 선생님이 이렇게 찾아오셔서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니까 정말 고마울 따름이죠."

한국으로 시집온 지 올해로 5년째인 엘리자 씨는 특히 시장에 가서 장을 볼 때 필요한 배추나 무 같은 단어를 연필로 연습장에 써보고 또박또박 읽었다.

엘리자 씨는 "나중에 지훈이가 좀 더 크면 타갈로그어를 가르칠 생각"이라며 "아침에 일어나면 지훈이랑 타갈로그어로 `마간다 오마가`라고 아침인사를 나눈다"고 말한 뒤 수줍은 듯 웃음을 지었다.

한국다문화센터와 경기도청은 올해 대학생 100여 명으로 구성된 `다문화 케피터즈(kepitez) 봉사단`을 출범시키고 지난 3월부터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상대로 멘토링 봉사를 시작했다.

멘토링을 받는 자녀 연령층은 두 살배기 아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양하며 방과 후 학습지도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장양은 매주 금요일 3시간씩 지훈이 한글 공부를 봐주고 화요일에는 일본 다문화가정 자녀인 강문정(12)ㆍ우리(10)ㆍ수호(7) 삼남매를 가르치고 있다.

장양은 "학교 다닐 때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다문화가정에 와서 자녀들을 가르치니 큰 보람을 느낀다"며 "지훈이와 만난 지 이제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