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강국 레인보우 코리아＜2부> / 다문화강국 이젠 실천이다 / ⑧ 이별 앞둔 멘토링 ◆

베트남 다문화가정 자녀들인 용현ㆍ용태 형제가 다문화 케피터즈 봉사단 1기인 김보배 씨와 안자영 씨로부터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 다문화가정들이 안고 있는 문제인 엄마와 자녀 사이의 `언어장벽`을 대학생 멘토들이 나서서 해결해주고 있다. ＜김성중 기자＞

첫 만남은 낯설고 힘들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용현이네 집을 찾은 김보배 씨(이화여대 국제사무학 4학년)는 어린 초등학생들을 가까이서 지도한 경험이 전무했다.

용현이네 가족 역시 이방인을 집에 들여본 경험이 없어 내심 경계심도 없지 않았다.

경기 안산시 선부동에 사는 박용현(12), 박용태(9) 형제는 베트남 출신 엄마 아래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다.

김씨와 안안씨(중앙대 생명과학 4학년)는 지난 3월부터 용현 형제의 `멘토링 교사`로 매주 이 가정을 찾았다.

첫 만남이 시작된 후 불과 4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김씨와 안씨는 이제 용현이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용현ㆍ용태 형제가 다음 학기 짝꿍이 되고 싶은 여학생이 누구인지 가정 사정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을 정도다.

이날은 형제의 시험 성적이 공개되는 날이다.

동생인 용태는 "잘 본건 95점, 못 본 것도 네 개밖에 안 틀렸어요!"라며 조잘조잘 떠들고 있다. 반면, 형인 용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문제집만 보고 있다. 용현이는 "과학을 망했어요. 앞에서만 두 개 틀리고 뒤에도 모르는 게 많았어요"라며 조그만 소리로 말한다. 용현이가 속이 상한 건 내심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준 안씨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안씨가 "용현이가 원래 공부를 더 잘하는데 이번엔 동생한테 양보했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마음이 조금 풀린 듯 웃어보인다. "어느 선생님이 더 좋으냐"는 장난스러운 질문에 대답 대신 안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안씨가 보여준 용현이의 `멘토링 노트`에는 `용현이는 용태의 장난을 잘 받아주는 좋은 형입니다. 화가 나도 버럭 화를 내지 않고 잘 타이를 줄 압니다` 등 칭찬이 가득했다. 벌써 귀퉁이가 뭉툭하게 닳아버린 안씨의 멘토링 노트는 지난 3개월간 용현ㆍ용태 어린 천사들과 함께한 작은 역사의 기록으로 빼곡하다.

오고가는 시간이 길어 힘들었지만 김씨와 안씨에겐 즐겁고 보람 있었던 기억뿐이다. 그러나 이날만은 김씨와 안씨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다음 달이면 벌써 멘토링 기간이 끝나 용현ㆍ용태 형제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형제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다문화센터와 경기도청이 출범시킨 대학생 100여 명으로 구성된 `다문화 케피터즈(kepitez) 봉사단` 1기의 활동은 8월 중 마무리되고 8월 새로운 2기 봉사단이 출범하게 된다.

"용현이, 똑바로 앉아서 의젓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엄마가 돼지라고 놀릴 거야." 아이들의 수업을 지켜보던 엄마 남프엉(한국이름 이수민ㆍ41) 씨가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

베트남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던 프엉 씨는 용현이가 3학년이 될 때까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하지만 아이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어 장벽과 함께 한계가 느껴졌다.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은 이런 프엉 씨에게 `단비`와 같았다. 프엉 씨는 "한국에 온 지 14년이 돼가지만 사실 아직 한국말이 어렵기도 하고, 아이들 가르치기도 쉽지 않았는데 선생님들이 정말 성의껏 잘 가르쳐 주셔서 좋다"며 "멘토링 후 아이들 성적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아이들 성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도 알게 모르게 정든 안씨ㆍ김씨와 헤어지는 일은 그간 한국에 와서 마음 터놓고 사람을 사귀어 본 적이 없었던 프엉 씨에게도 속상한 일이다.

3시간의 수업 중 40여 분의 첫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과 선생님은 캠프 신청서를 쓰며 기대감에 젖었다. 프엉 씨네와 안씨ㆍ김씨는 오는 8월 18일부터 1박 2일간 경주로 교원에서 주최하는 여름캠프를 떠난다.

안씨ㆍ김씨와 용현ㆍ용태 형제에겐 마지막 이별여행이기도 한 셈이다.

아이들은 불가피한 사정을 알면서도 "나 선생님이 더 좋은데, 계속하면 안 돼요?"라며 졸라댄다.

김씨와 안씨는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대학 4학년임에도 3월부터 매주 세 시간씩 빠지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안씨는 "과거에 용돈벌이를 위해 초등학생 과외를 꽤 해왔는데 무료로 하는 봉사지만 용현ㆍ용태를 가르치는 게 더 즐거웠다"며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아쉽지만 열심히 아이들과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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