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8.13 02:48

 

국내 다문화가정은 열 집 중 아홉 집이 한국인 남편과 외국 출신 부인, 그 자녀들로 구성돼 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이들 대부분이 경남·북과 전남의 농촌 지역에 띄엄띄엄 흩어져서 살고 있다"며 "도시에 비해 전반적으로 소득이 적고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이 이들의 고민"이라고 했다.

전남 고흥군 점암면의 A(42·농업)씨는 매일 아침 8시에 두살배기 아들을 4㎞ 떨어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해가 진 뒤 데리러 간다. 베트남 출신 부인(23)은 부자(父子)보다 한 시간 일찍 공장에 출근해 오후 7시 이후 퇴근한다.

A씨가 아들의 재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잠들기 전까지 서너 시간이 전부다. 하지만 이 시간마저도 밀린 집안일에 바빠 이제 막 말문이 트이는 아들과 찬찬히 말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다. 잠들기 전 엄마가 아들을 안고 베트남어에 서툰 한국말을 섞어서 자장가를 불러 주는 것이 전부인 날도 있다.

A씨는 "우리 동네는 68가구밖에 안 되는 시골이라, 교육시설이라곤 어린이집이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두 나라 말을 다 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한국말 그림책 한권 사려고 해도 군청 소재지까지 나가야 하니…. 한국말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면 바랄 게 없습니다."

이웃 B(38)씨는 베트남 출신 부인(24)과 세살배기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두 나라 말을 다 가르치자"고 약속했다. B씨는 올 초 안방에 각종 동식물 그림과 베트남어·한글 단어를 맞추는 퍼즐을 붙이고, 부부가 돌아가면서 가르친다.

그는 "애가 처음에는 무척 버거워했는데 요즘은 한국말도 하고 베트남 말도 한다"며 "대견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네댓살까지는 한국말부터 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문제는 이런 고민을 상담할 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엄마 나라 말을 가르치기엔 한국 사회의 편견이 아직 강고하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많다. 같은 마을 C씨는 세살배기 딸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평생 살아갈 아이니까 철저하게 100% 한국인으로 키울 거에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지금은 다문화를 내세워봐야 좋을 게 하나 없어요. 아내가 한국 국적을 얻는 대로 완전히 한국 가족으로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