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한 거리 미술품들(미술장식제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법을 올 해 안에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시사저널 임영무(왼쪽), 시사저널 우태윤(오른쪽)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절대 빈곤과 절대 배고픔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그 시절 문화예술이란 사치품에 속하는 것이었다. 문화란 어리석은 백성을 일깨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믿은 계몽주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즈음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통 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이 제정된 후 19차례에 걸쳐 전부 또는 부분 개정되었다.

 특히 2007년의 전면 개정은 문화선전대 역할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킨 문화예술인을 가장한 정치꾼들이 ‘대못’으로 박아놓고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시절 새로 제정된 문화 관련법은 ‘문화예술교육지원법’ ‘미디어 교육진흥법’ ‘전통예술공연 진흥법’ 등이었다. 아울러 ‘음반·비디오·게임에 관한 법률’은 ‘음악산업진흥법’ ‘게임산업 진흥법’으로 분리되었고, ‘광주 문화중심도기조선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동아시아 역사예술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 법안’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조성 및 지원에 대한 특별법안’ 등이 제안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알고 보면 특정 정당의 지지 기반을 염두에 둔 법안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법안들은 사실 기존의 ‘문화예술진흥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정되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법안은 변화하는 문화생태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해와 이념을 확대하기 위해서 또한, 문화관광체육부의 조직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상부상조’하는 형태로 제정되고 개정된 것이 사실이다.

달라진 국가의 격에도 맞아야

따라서 만신창이가 된 시대착오적인 법률로 문화 부르주아 1천만명 양성을 통한 ‘21세기 문화 한국’으로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변화된 시대, 변화할 시대를 담아낼 새로운 문화예술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문화의 종 다양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광의의 문화예술에 선언적 의미를 갖는 법,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달라진 국가의 격에 맞는 새로운 문화예술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1972년 처음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은 국민에 의한 자발적 문화 발전보다 관 주도, 국민 계도의 목적이 강해 원천적으로 문화의 자율성을 침해할 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일방적인 배급형 문화 소비는 공급자만 만족시킬 뿐 시민들이나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전혀 행복하거나 문화적이지 않다. 이런 점을 극복한다고 지난 정부는 민간 중심의 문화예술위원회로 개편했지만, 이름만 바뀌었지 문화부 그늘에 그대로 머물렀을 뿐 아니라 자기 편 챙겨주기라는 전리품 분배 방식을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와 변화하는 세계관을 반영하는 한편,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규범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의 법률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명하게 명시할 것은 문화부는 정책과 지원을 담당하는 주관 부처로 직접 사업이나 이벤트성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못 박아야 한다. 

구 법은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예술가들의 지위 보장과 지원을 통해 문화예술적 생산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생산자인 예술가 못지않게 소비자인 일반 국민도 중요하다. 아니, 이들을 문화 생산자로 이끌어낼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 문화는 굉장히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과 연구 실천을 통해 제작된 제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문화예술은 고급 문화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기만’하는 문화적 상품만 양산하거나, 관이 제공하는 저급하고 조악한 배급품 같은 형태였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서 소비자 스스로가 바르고 질 높은 문화를 선택하고 이를 소비하고 자기화하는 문화 복지적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다문화로 변한 사회 담아낼 필요도

현재의 법은 일반적으로 고급 예술의 발전을 전제로 했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장르 간 통합과 수많은 변종이 탄생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담아낼 수 없다. 일상과 교감하는 예술, 쉽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공공 영역에서 문화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쾌적하고 세련되게 공유하는 문화예술을 제공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와 담론의 생산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지만 대개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폭 넓은 문화 이론과 다양한 관점의 미학이 전제로 작동해야 한다. 게다가 구 법은 인문 정신은 없고 기예만 중시하는 기형적 틀을 지녔다. 거기다 섣부른 실용 학문과 문화 산업론은 예술을 왜곡시켰다.

여기에 ‘눈부신 속도’로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불순한 소수 의견이 만인의 지식이 되는’ 시대가 된 지금 인터넷 미디어와 각종 영상 매체, 컴퓨터, 디지털 그리고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인문학만이 아니라 재래의 수공업적인 예술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인터넷 문화의 상호성은 다양한 소통 문화, 소수자 문화, 하위 문화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인한 다인종과 문화적 다양성 형성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런 시대를 담기 위해서는 새 집이 필요하다. 또한,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은 고령 인구의 문화적 여가와 복지도 고려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은 단순하게 보건복지부의 일이 아니라 문화부의 몫이다. 

또, 한국은 1백70여 개국에서 이주해온 1백20만 외국인과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문화적 동화주의를 강조하는 방법으로는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없다. 문화란 이른바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자의 문화까지도 관용으로 끌어안을 때 완성된다.

문화예술을 총괄하는 법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 가치 분명한 이념과 실천적 의지를 담은 선언적이며 명시적이고 공리적인 전제를 필요로 한다. 현재의 법은 분명한 목적과 방향보다 추상적이거나 때로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문화관광부의 실무 지침서 같다. 게다가 자의적으로 수없이 개정되어 법체계의 일관성을 잃어버렸다. 참여정부 시절 현재의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자 2004년에는 ‘문화기본법 제정을 위한 기초 연구’를 완성한 바 있다. 또, 2007년에는 지역문화진흥법, 문화기본법, 예술진흥법, 문진기금 민간 자금화, 영화발전기금 등 법·제도의 제정이나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2006년 총선에서 패배한 당시 여당은 법안을 통과시킬 동력을 잃고 부분적인 개정에 그치고 말았다. 여기에 보다 직접적으로 전체 법률의 체제가 확장된 문화의 개념보다는 협의의 장르 나열식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문화부의 여타 법률과도 상충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조항들이 있다. 그리고 타 부처가 관장하는 유사 법령과 상치되거나 중복되고, 때에 따라서는 특별법으로 제정된 탓에 문화예술진흥법이 무력화될 때도 있다. 따라서 지난 10년 동안 더욱 왜곡되고 도구화된 법안의 개정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으면서도 이런 모순된 법률을 방치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