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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우리가 남인가요? 같은 한국인인데 나그네 같은 시선이 부담돼요."
"다문화 행사가 언론에 너무 자주 보도된 때문인지 '2류 집단'으로 전락해가는 느낌도 들어요."
"모두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작 학교들은 '이중언어 교수요원'을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더군요."
27일 오후 연합뉴스 한민족센터를 찾아온 필리핀 출신의 임쉘라(치의학 박사) 씨 등 결혼 이주 여성 9명은 최소 1년에서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느낀 경험 등을 토대로 다문화 사회 정착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대졸 출신의 '고급 두뇌'로 뽑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교육대학이 올해 처음 시도한 다문화 가정 아동들을 위한 이중언어 교수요원 교육을 6개월(900시간)동안 받아온 이들이 한 시간여 동안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고언"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들은 28일 오전 11시 서울교대에서 열리는 수료식에 참석한 데 이어 내주부터 서울 시내 11개 '다문화 교육 거점 초등학교'에 배치돼 방과후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된다.
태국 출신으로 한국에 시집온 지 10년째에 접어드는 '큰언니' 박 가비니(영등포구 당산1동) 씨가 먼저 "한국인들은 아직도 얼굴 모습이 다른 우리들을 낯설어하는 등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며 "언론 보도와 달리 실제론 다문화 수용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영중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박 씨는 그러나 "다문화 가족을 경원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가만히 앉아서 한국사회가 변하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도 학교 등에서 다문화의 가치를 열심히 홍보하고 가르치는 등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2월 한국 남성과 결혼한 대만 출신의 무샹이(穆香怡.강서구 화곡동) 씨는 결혼이주 여성 중 '막내'답게 한층 솔직한 태도로 "단일민족 의식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나그네'처럼 무시 당하는 느낌이 적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대만 사람들과 달리 친척이나 가족끼리 연대감이 강하고 정이 많은 것"을 한국인의 장점으로 꼽았다.
"70여 송이의 화려한 꽃밭에서의 지난 6개월이 꿈만 같았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낸 몽골 출신의 '청일점'인 바야르 막나이 씨는 교수요원들이 배치될 초등학교의 '준비 부족'을 지적, 참석자 다수의 공감을 샀다. 시교육청이나 학교(서울교대)에서 사전에 일선 초등학교들과 협의를 통해 '다문화 교수요원들의 역할' 등을 좀 더 세밀히 정해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들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고 있더라"면서 "우리는 준비돼 있는데 그쪽은 아직 수용 태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심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수요원 70명 중 유일한 미혼인 이현정(26.재일동포 2세) 씨나 톈진(天津) 출신의 위한인(于翰音.한족) 씨 역시 배치될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본 뒤 실망했다는 눈치다. 후쿠시마(福島)의 다문화 가정에서 콤플렉스 등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되자 '다인종 국가' 미국에서 고교, 대학을 거쳐 지난해 9월 뿌리를 찾아 한국에 온 이 씨는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눈총을 받는 게 부담이 간다"며 "원어민 교사는 한국어를 못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임쉘라(필리핀) 씨 역시 "딸 셋을 낳아 키우다보니 한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말이 서툴거나 피부색 등이 다르다고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 씨는 "교사들도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심지어 이중언어 교수요원의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당황스러웠다"며 자신들의 역할에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산둥성 출신인 좡샤오(莊瀟.한족) 씨는 한국 사회 일각의 중국에 대한 저평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문제점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는 이곳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그는 '스승과 친해지면 가르치는 바를 잘 믿고 따르는 법(親其師 信其道)'이라는 금언을 인용, "학생들을 잘 가르칠 방법에 골몰하는 것보다 중국인으로서 어떻게 아이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탑산초등학교에 배치될 러시아 캄차카 출신인 이 엘레나(고려인 3세) 씨는 "다문화 사회의 정착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내ㆍ외국인 간 갈등이 생기지 않는 등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다"며 "한국정부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각종 서비스뿐 아니라 이 같은 갈등해소를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duckhwa@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