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어머니가 바로 선생님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다문화가정인 필리핀인 한유진 씨가 8일 서울 보광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필리핀 문화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한 씨는 서울교대 주관으로 열린 '다문화 가정자녀를 위한 이중언어 교수 요원'으로 선발돼 이날 첫 교생실습에 나섰다. 2009.6.8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필리핀 국기의 별이 왜 3개인지 아는 어린이?"

"저요! 큰 섬이 3개이니까요."

"맞아요. 참 잘했어요."

8일 오후 서울 보광초등학교 2학년 1반 교실. '이방인 교사'의 등장으로 일순간 조용해졌던 교실이 필리핀 출신인 한유진(37.패트리샤 아마란토.서울 자양동) 씨의 유창한 한국어로 다시 활기가 넘친다.

다문화가정 어머니가 선생님으로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서울교대 주관으로 열린 '다문화 가정자녀를 위한 이중언어 교수 요원'으로 선발돼 교육을 받고 있는 결혼 이민 여성들이 8일 서울 보광초등학교에서 동료인 필리핀인 한유진 씨가 학생들에게 필리핀 문화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몽골 소드에르덴 오양가, 키르기스스탄 아이다 아름콜로바, 일본 마사코, 일본 이현정, 우즈베키스탄 정나래, 러시아 니가이율리아 씨. 2009.6.8 zjin@yna.co.kr

서울교육대학 이중언어 교원 연수 과정의 교육실습생(교생)인 한 씨가 컴퓨터 등을 이용한 형형색색의 교재와 영어, 타갈로그어 등을 사용해 필리핀의 지리와 역사 등을 설명하며 질문을 하자 여기저기서 "여기요!", "저도 알아요!"라는 소리가 빗발치는 등 수업 참여의 열기가 뜨겁다.

올 3월부터 6개월 과정의 서울교대 연수 프로그램을 다니는 한 씨 등 결혼이민자 78명은 9월 중 시내 다문화 거점 초등학교로의 배치를 앞두고 일주일 간 서울 시내 8개 학교에서 교육실습을 받고 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오랫동안 '묵언수행자'처럼 말을 잊고 외톨이로 지내온 이수한 군이 말문을 열고 만면에 웃음을 지은 데 이어 교단에 서 있는 한 씨에게 말까지 걸은 것. 필리핀 출신의 어머니(수전 벤토레로)를 둔 이 군은 우리 말이 서툴러 1학년 과정을 2년 간 학습한 뒤 2학년으로 올라왔으나 여전히 언어 문제로 적응을 못해왔다는 것.

담임인 백홍숙 선생은 "늘 우울한 모습이었던 수한이가 오늘 처음 살아난 느낌이다"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외국 선생님에게 세계문화를 배우게 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국제결혼 또는 외국인 근로자 가정 출신의 다문화 어린이(18개국 40명)가 많아 지난해 교육청으로부터 '다문화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나라별로는 일본이 7명으로 가장 많고 인도(4),이란, 이라크, 모로코, 몽골(이상 3명) 등의 순이다.

다문화가정 어린이 수업이 즐거워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다문화가정인 필리핀인 수잔 벤톨레로 씨(왼쪽)가 8일 서울 보광초등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이중언어 교수요원'으로 선발된 필리핀인 한유진 씨의 필리핀 문화에 대한 수업을 아들 이수한 군과 함께 참관하고 있다. 2009.6.8 zjin@yna.co.kr

이날 한 씨의 첫 공개 수업은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변호사인 아이다 아름콜로바(34) 씨, 고려인 4세인 니가이 율리아(러시아), 재일동포 2세인 이현정 씨 등 '교생' 동료 8명이 지켜봤다.

이날 불광동 연광초등학교에서도 '다문화 교사' 후보생들의 교생실습이 실시됐다. 이들은 오전에 채용학 교장의 '바람직한 교사상'과 홍주희 교감의 '수업설계와 수업에 임하는 교사의 자세' 특강을 들은 뒤 오후부터 관찰학습 등을 하며 현장 분위기를 익혔다.

타슈켄트 사범대(러시아문학 전공) 출신의 고려인 3세로 5년 전 결혼해 한국에 입국, 5살바기 딸을 둔 이스베틀라나(우즈베키스탄) 씨는 "교사들의 체험을 들어 보고 학생들을 직접 상대해보니 교사 지도안인 교수·학습과정안을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서 "9월 새학기가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네팔,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국 12명의 다문화 어린이가 다니는 이 학교에는 이스벨틀라나 씨와 김민주(재중동포) 씨 등 8명이 배치돼 일주일간 실습을 한다.

연광초등학교 실습생을 지도하는 김정원 서울교대 교수(국어교육학과)는 "처음 실시하는 교육이어서 걱정했는데 다문화 가정 어린이나 학교 당국 대다수가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일각에서 여전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는 만큼 교육 대상을 다문화 학생에서 일반학생과 학부모 등으로 확대하는 등 사회통합에 한층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니가이율리아씨 다문화가정 선생님으로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서울교대 주관으로 열린 '다문화 여성자녀를 위한 이중언어 교수 요원'으로 선발돼 교육을 받고 있는 러시아인 니가이율리아 씨가 8일 서울 보광초등학교에서 동료인 필리핀인 한유진 씨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2009.6.8 zjin@yna.co.kr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