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에 심는 이주여성들의 꿈
[기고] 강교자 한국YWCA연합회 회장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처음 갖게 되었어요. 그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온다고 했어요. 꿈같은 이야기였어요. 지각 한번 안하고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 꿈이 이루어졌어요.”

딘티흐엉(27, 베트남)은 진주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의류수선사로 활동하고 첫 월급을 받았다. 2005년 결혼이주로 한국에 와서 ‘이제 진짜 이 나라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기분을 실감했다는 그녀. 좋아하는 재봉 일을 마음껏 하고 돈까지 벌 수 있어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소감은 비단 그녀 혼자만의것은 아니었다.

지난 8월 여성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채용된 110명의 결혼이민여성이 한결같이 쏟아내는 말이었다. 바리스타, 의류수선사, 한국어보조강사, 영어강사, 다문화강사, 수공예품제조사, 천연화장품제조사, 네일아티스트, 이미용사, 생활정착지원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110명의 결혼이민여성들.  

“첫 월급 받아 시어머니 내의 사 드렸어요”

“첫 월급을 받고 내의를 사서 시어머니를 드렸어요. 시어머니께서 친척에게 전화를 하면서 자랑을 했어요. 남들에게 저를 칭찬하는 것을 처음 들었어요.”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했어요. 밥값을 내가 계산 했죠.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다는 것이 기뻐요.”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당당하게 용돈을 보내드릴 수 있게 되어 좋아요.”

이들 대부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또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선물을 샀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만큼 소중한 돈이었다. 남은 돈은 통장에 고스란히 아껴두고 나중에 큰일을 하는데 쓰고 싶다고 했다.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해 아껴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YWCA는 여수, 진주를 중심으로 결혼이민여성들의 인권과 한국사회적응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2007년부터 롯데홈쇼핑의 후원으로 전국으로 결혼이민여성운동을 확장하면서 한글과 한국문화, 요리, 사진을 가르치고, 남편과 가족들에게는 아내와 며느리 나라의 문화교육을 실시해 오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워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모습을, 또한 시댁식구들과 함께 김장하는 모습을 담은 UCC 작품들과 서투른 한글로 써 내려간 일기와 편지들. 외로움과 힘듦을 이겨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결혼이민여성들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2008년 YWCA는 결혼이민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취업을 위한 직종개발과 취업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행사장으로 찾아온 500여 명의 결혼이민여성은 한 목소리로 일을 하고 싶어했다.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가 서툴고 컴퓨터가 능숙하지 못한 그들이지만 뭐든지 배우려고 했다.

기술 익혀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결혼 이민여성들

올해 시작된 30개 지역에서의 YWCA 직업교육은 그들의 꿈을 한낱 일장춘몽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굳은 의지이기도 했다. 같은 염원을 두고 바라는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이 많을수록 그 꿈은 쉬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300여 명의 결혼이민여성이 늦봄부터 3~5개월 동안 한국사회에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고 또 배웠다.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익혔다. 여성으로서 가정과 일의 양립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른 문화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또 다른 편견과 싸워내야 하는 일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적게는 40시간, 많게는 80시간의 직업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새롭게 실시하는 여성부의 사회서비스일자리창출사업이 큰 의미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직업교육을 마친 여성들이 직장체험을 하게 되었다. 비록 인턴십의 과정으로 하루 5시간 근무에 적은 봉급을 받지만 이들은 더없이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교육기간 내내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체험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익힌 기술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선생님으로, 기능인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의욕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편견 때문에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지쳐서 포기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상을 향해 날아오르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날개가 꺾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젊다. 그리고 열정이 넘친다. 무엇보다 이 사회에, 가족에게 감사해 하는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아름다움이 한 송이 꽃으로 온전히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처럼, 한국에서 여성직업인으로 또다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는 그들. 그들의 희망이 열망으로 차올라 봉오리를 터뜨릴 수 있도록 우리는 ‘이방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그들을 학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