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용산·서초구 등 5곳서 '글로벌빌리지센터' 운영…
장기 거주한 외국인 센터장이
국내 정착까지 도우미 역할
TV토크쇼 '미녀들의 수다'로 유명해진 이탈리아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27·Christina Confalonieri)씨는 매일 경기도 안양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역삼동으로 출근한다. 그는 역삼 글로벌빌리지센터의 센터장으로, 우리로 치면 동장이다.'서울글로벌빌리지센터'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해주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한국어 강좌 등 문화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일종의 외국인 동사무소다. 크리스티나씨는 "한국을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서울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이 정착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는 지난해 1월 생긴 마포구 연남 센터(중국인)를 비롯, 용산구 이촌(일본인), 용산구 한남·이태원, 서초구 서래(프랑스인), 강남구 역삼 등 5곳에 글로벌빌리지센터가 운영 중이며, 센터장(동장)들은 모두 한국에 4~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1년 계약의 6급 공무원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하루 4시간씩 근무해 월 17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대개는 매일 아침 일찍 나와 해질 무렵 퇴근하곤 한다. 이들을 통해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의 애환을 들어보았다.
◆이촌은 "수도 고장수리", 연남은 "비자·이혼상담"
- ▲ ‘외국인 동사무소’라 불리는 서울시내 4개 글로벌빌리지센터장들과 서울글로벌센터장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앨런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장, 유암 연남 센터장,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역삼 센터장, 이시하라 유키코 이촌 센터장, 폴 핫세 한남·이태원 센터장./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중국인들을 비롯해 외국인 1300여명이 모여 사는 마포구 연남 글로벌빌리지센터에는 언어와 문화장벽으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다. 센터장인 중국인 유암(劉岩·36)씨는 "중국이나 베트남 출신의 결혼 이민자들이 귀화 절차를 문의하는가 하면, 한국인 남편과 싸우고 이혼상담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이던 남편과 결혼해 2003년 한국 땅을 밟은 유암씨는 이혼 위기에 처했던 20대 중국 여성을 도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혼 초기 한국인 남편은 늦게 퇴근하고 생활비도 잘 주지 않았대요. 중국에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많이 하는데 한국은 딴판이잖아요. 여기에 시부모와의 갈등까지 겹쳐 결국 이혼 일보 직전까지 갔죠. 하지만 센터에서 한국인 남편과 중국인 부인을 불러 문화 차이를 설명하고 설득했더니 오해가 풀렸어요."
이태원은 백인들은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다양한 민족의 '인종 저수지'. 한남·이태원 센터장인 캐나다인 폴 핫세(Paul Hussey·32)씨는 "세계 각국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며 "구청이나 동사무소 등의 행정 시스템이나 버스·지하철을 타는 방법, 부동산 계약, 인터넷 쇼핑방법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영어 강사로 7년 전 한국을 찾은 그는 현재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역삼 센터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200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크리스티나씨는 "한국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위해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인의 심리와 습관, 예절 등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전해준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직접 얘기하지 않고 가슴속에 담아두는 경향이 많은데, 외국인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지, 외국인들의 행동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언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전통 간직해야"
센터장들은 서울에 살면서 느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핫세씨는 "'글로벌 서울' '글로벌 코리아'도 좋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는 잘 보존해야 한다"며 "피맛골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도심의 한옥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티나씨는 "한 번은 아랍계 외국인이 센터를 찾아와 '이렇게 친절하고 좋은 곳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감격해하더라"며, "그 사람은 지금까지 피부색이나 겉모습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무시당해왔는데, 한국보다 못한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암씨는 "서울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는 본토 음식을 맛보기 어렵다. 정통 중국 음식들도 취급하면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글로벌센터는 글로벌빌리지센터와는 별도로 한국프레스센터 3층에 사무실을 두고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센터장인 영국인 앨런 팀블릭(Alan Timblick·66)씨는 "서울에 다문화(多文化) 외국인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며 "앞으로 글로벌빌리지센터와 함께 출입국, 부동산 임차, 교통, 인터넷 쇼핑 등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유형별로 메뉴화해 더 신속하고 정확한 상담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