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르치는 베트남 새댁 황티탄항씨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로 일하면서 후배 이민자를 위해 한글을 가르치는 황티탄항(36.옥천읍 마암리)씨. 2009.10.6 bgipark@yna.co.kr

옥천 다문화센터 황티탄항씨..후배이민자에 한글교육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베트남 새댁 황티탄항(36.옥천군 옥천읍 마암리)씨는 '왕언니'로 불린다.

한국생활에 낯선 자국민 여성들의 가정상담을 맡으면서 틈나는 대로 한국어수업 보조교사로 나서 정붙일 곳 없는 후배들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생활 5년째인 그녀는 지난 5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국어능력시험(4급)에 합격한 뒤 한국외국어대학교 다문화연구센터 면접을 거쳐 지난 7월부터 이 센터에서 통.번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베트남 운수회사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2000년 같은 회사 정비사였던 한국인 남편(35)을 만나 사내 결혼한 그녀는 남편과 의사소통을 위해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청하며 한글 공부를 시작됐다.

회사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사전을 뒤적이며 더듬더듬 한글을 깨우친 그녀는 2003년 시댁인 옥천군 청산면에 들어와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글공부에 나섰다.

시할머니, 시부모 등 대가족 속에 묻혀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언어'를 습득한 그녀는 1년 만에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카센터를 운영하는 남편을 도와 인근 도시를 오가며 부품 심부름을 할 정도로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급기야 작년에 옥천읍내로 분가하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인연을 맺은 뒤 한국에서 통.번역사라는 첫 직장도 갖게 됐다.

그녀의 일과는 오전 9시∼오후 6시 베트남 결혼이민자를 만나 1대1로 대화하면서 애로나 고민을 들어 한국생활 적응을 돕는 것이다.

한국말이 서툰 후배 이민자를 위해 베트남어로 상담한 뒤 결과를 한국어로 또박또박 기록하는 게 그녀의 주된 업무다.

그녀는 한국어 수업이 열리는 매주 수.금요일에는 한글교실 강사로 나선다. 스스로 맡은 일이다.

결혼이민자에게 '언어' 문제가 가장 큰 애로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먼저 한국어 예절부터 가르친다.

적응을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말이 바로 예절언어라는 그녀의 소신 때문이다.

옥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은주 팀장은 "언제나 밝은 미소를 간직한 채 열성적으로 일하는 황티탄항씨한테는 한발 앞서 한국에 들어온 선배 이민자로서 후배들의 한국정착을 도와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 같은 게 있다"며 "친정 언니 같은 그녀에게 많은 이민자들이 깊은 신뢰감을 느끼고 있어 센터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퇴근 뒤 직접 담근 김치로 찌개를 끓이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숙제를 돌봐줄 정도로 한국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평을 듣는다.

언젠가는 한국생활을 꿈꾸는 베트남 여성들을 위해 쉽게 배우는 한글과 생활예절이 담긴 한국생활 가이드 책을 내는, 당찬 꿈을 갖고 있다.

그녀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베트남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른 아침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며 "다문화가정 부부갈등의 원인이 대부분이 언어나 습관 차이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들을 위해 생활지침서를 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요즘도 초등학생 아들과 마주앉아 교과서와 동화책 읽기를 즐긴다.

그녀는 "어렵지만 한글은 표현이 다양한 게 매력"이라며 "교과서를 통해 글을 배우고 좋아하는 가수 비의 노랫말이나 드라마 대사에서 표현법을 깨우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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