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15만 명의 이주민이 사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거리나 지하철에서는 물론이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외국인 이주민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살며, 그들에게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지난 17일 부산 동구 부산일보사 소강당에서 열린 이주민 발언대회 '야! 한국사회'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하루미(일본)=말보다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한번은 설거지를 하려다 약속이 생겨 밖에 나가야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나갔다 돌아오니 '그렇다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나갔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자꾸 묻습니다. 길에 나가도 한 번씩은 더 쳐다봅니다. 사람은 다 똑같은데 다른 나라 출신이라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주 여성들의 자녀들이 이웃들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한글 교육시설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석취연(중국)=남편과 저는 둘 다 재혼입니다. 남편은 중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면 제가 도망가지 않고 집안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남편 참 똑똑한 사람입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받아들여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난 아이는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 고집을 부리고 남편과 자주 싸웠습니다. 이주여성에게는 한국어를 배울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위한 교육시설은 없어 아이는 노인한글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교육시킬 시설도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한국과 중국을 잇는 훌륭한 인재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꿈꾸던 나라 아니었지만 열심히 살겠어요"

우네르체체크(몽골)=한국이 드라마처럼 잘 산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막상 와보니 꿈꾸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만 하고 뭐든지 빨리빨리 재촉하는 나라였습니다. 남편 집도 우리 몽골집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라면만 계속 먹었습니다. 남편까지 회사 일이 바쁘다고 매일 늦게 들어왔습니다. 자연히 남편이랑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왜 돈은 달라는 대로 안 주냐' '왜 혼자 있게 내버려두나'를 이유로 남편을 힘들게 했습니다. 어느 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라면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어와 요리도 배우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바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일을 해보고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허락 받지 않고 사진 찍어대면 불쾌해요"

굴노라(우즈베키스탄)=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국에 처음 와서 '어디서 왔어요''왜 한국에 왔어요'라는 질문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허락을 받지 않고 제 사진을 찍는 행동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또 한국인들이 제 아기를 만지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주 입에 넣는 손을 만지는 일은 제발 삼가 주세요. 이제는 밥도 된장도 잘 먹고 대화도 잘해 한국 사람들의 행동과 말도 이해가 잘 됩니다. 얼마 전에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왔는데 이제는 그곳 음식이 기름져서 먹지를 못하게 되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그곳 사람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에요.

"도망간 이웃 몽골 며느리 대신 사과할게요"

작드허르러(몽골)=우리 아파트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몽골 며느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아주머니 아들도 몽골 여자랑 결혼했다고 합니다. 결혼 2주일이 되던 날 며느리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며느리가 밖에 나갔다 어느 아파트인지 못 찾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찾았습니다. 다음날 경찰에 신고해서 아파트에 있는 CCTV를 확인하니 며느리가 짐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걸 보고서야 도망간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두 달 뒤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보고 '요즘 안보이기에 도망간 줄 알았네. 있으니 반갑네. 잘 살아라'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지만 아주머니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었습니다. 도망간 여자를 생각하면 아주머니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여자 대신 아주머니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베트남 어로 된 신문 만들어 한국 소개 해요"

팜티쭝(베트남)=저희들은 부산에서 매달 베트남 어로 된 베트남 여성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신문에는 한국에 살면서 꼭 필요한 생활정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문을 만들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간단한 한국요리와 속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을 통해 친구들이 기사를 보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시부모와 남편에게 칭찬을 받아 행복한 모습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신문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내년에는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베트남 여성신문을 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문화 자녀들이 왕따 당하는 일 없었으면 해요"

조이차다케우(태국)=저는 2000년에 남편을 만나 초등학생 2학년, 1학년이 된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딸만 낳고 아들을 못 낳은 여성들이 구박받고 심지어 쫓겨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태국에서는 아들보다 딸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딸을 못 낳은 태국여성들이 구박받거나 쫓겨난 일은 없습니다. 이주여성의 한국생활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자녀들의 피부색깔 때문에 고민하는 이주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도 아닌데 아프리카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아십니까. 앞으로 다문화 자녀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왕따나 놀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다문화를 더 존중하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 다문화인식 개선 교육 절실합니다"

이민(중국)=이주민은 불쌍한 존재라는 인식이 너무 강합니다. 이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무조건 정부에서 정한 방식대로 사업을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멘토링, 친정엄마·언니 맺어 주기 사업'도 그렇습니다. 우리 결혼 이민자들이 언제 친정엄마나 언니가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이 사업이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겠습니까?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서 하는 이주민을 위한 사업이 퍼주기식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결혼 이민자는 물질도 아니고 애를 낳는 기계도 아닙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은 대부분 한국어 배우기, 한국문화체험 등 한국식 동화교육인데 이것은 민족문화 강요입니다. 이주민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다문화인식 개선 교육이 더 절실할 때입니다. 박종호·윤여진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