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 틴툰(버마)씨는 19살에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한국은 88올림픽을 통해 유명해진 나라였다.
아웅 틴툰씨는 한국에 가서 일을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해외 경험도 익힐 수 있으리란 생각에 산업연수생 신청서를 냈다. 한국으로 가는 비용은 빚을 져서 마련했다.
아웅 틴툰씨는 ‘산업연수생’이 되면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했을 때 그 모든 것이 헛된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일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고용주는 툭하면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다.
아웅 틴툰씨는 같은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한다. "부모님을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산업연수생이라고 해서 한국에 왔는데 현실은 노예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에는 아웅 틴툰씨와 같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찾아왔다. 당시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의 여파로 산업구조의 재편현상이 나타나 제조업 부분의 인력이 대거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생산업 부분에서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력난으로 허덕이던 기업들은 외국인력 도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외국 인력을 통해 노동력을 안정되게 공급함은 물론 값싼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외국 인력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는 사이, 노동시장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장기체류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가 급증하자 마침내 정부는 공식적인 제도를 마련해 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94년에 시행된 이른바 '외국인 산업연수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연수생'이라는 이름은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다. 산업연수생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고 기술을 배우는 학생으로 간주됐으므로 노동법에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산업연수생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노출됐으며 작업장 내에서의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노동법에서만 배제된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 의료보험 등의 사회복지 제도의 혜택에서 배제돼 이를 둘러싼 각종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산업연수생은 미등록 노동자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업체를 이탈했고, 그결과 2002년에 미등록 노동자의 비율은 전체 이주노동자의 80%에 이를 정도가 됐다.
시작부터 삐걱거린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 제도의 폐혜가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산업연수생 제도를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부르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합리적인 외국인력 정책 수립이 강력히 요구됐다. 이주노동자들 역시 거리 집회나 캠페인, 농성 등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인력정책으로 고용허가제를 마련했으나, 산업연수생 제도로 이권을 챙기던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반발 때문에 결국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와 병행하는 타협안으로 2004년 출발했다.
당시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쟁점사항은 미등록 노동자의 합법화 문제였다. 정부는 당시 약 30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노동자 중 체류기간이 4년 이하인 약 18만 명의 노동자만 합법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12만 명의 4년 이상 체류자들은 제외시켰다.
이에 대해 이주노조 측은 "4년 이상 체류자들이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해 온 숨은 공로자들인데 이들을 배제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안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주화 원칙'을 내세워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고용허가제는 10만 명 이상의 미등록 노동시장과 산업연수제의 병행실시라는 불안정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게 됐고 기본적인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가 줄어 들었으며 임금체불, 폭력 등 인권침해도 감소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100만 명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라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고용허가제'는 이름 그대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해줄 것을 요구하는 고용주 중심의 제도"라며 "우리나라는 향후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지금의 고용허가제로는 미래 다문화사회에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며 "미래사회에 대비한 외국인력 고용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