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 제도에서는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고용허가제의 시행으로 비로소 노동권을 인정받게 됐다.
또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후 지난 5년간 미등록 체류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 통계자료(2009.8)에 따르면 외국근로자의 사업장 이탈률은 고용허가제 원년(2004년) 총 3167명 중 23명(0.73%)이었으나 산업연수생제가 폐지된 2007년 3만 3687명 중 1163명(3.45％)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정착되면서 올 6월 3만 1605명 중 572명(1.81％)까지 다시 떨어졌다.
임금체불을 비롯한 부당행위와 근로자의 사업장 이탈, 송출 비용도 줄었고 송출과정도 한층 공정해졌다는 것이 노동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 등은 고용허가제가 다문화사회에 역행하고 있다며 거리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대체 고용허가제의 어떤 점이 이들로 하여금 거리로 나서게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 폭력과 임금체불 # 라크밀(스리랑카)씨는 경기도 소재의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 공장책임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는 이후 관할 경찰서에 고소를 진행했다. 그는 "폭행사건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된 후 회사측에서 폭행을 한 공장책임자를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4회의 사업장 이동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다"며 "첫번째는 사업장 도산으로, 두 번째는 폭행으로, 세 번째는 임금체불, 네 번째 또한 폭행으로 사업장을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임금체불, 폭력, 폭언 등의 인권침해는 과거 산업연수생 시절부터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왔다. 하지만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폭력문제는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에서 발간한 '고용허가제 시행5주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겪은 인권침해 경험은 임금체불과 폭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체불 경험을 한 경우는 59.5%에 달했으며 동료나 상사에 의한 폭언과 구타 경험이 각각 35.8%와 10.5%였다. 또한 이외에도 차별대우, 발병/산재 방치, 신분증 압수, 부당해고 등 다양한 인권침해 경험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에 따른 제한이 있기 때문에 폭행이나 폭언을 당하고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인노무사 하윤성 씨는 "내국인끼리 회사에서 폭행을 가한다는 것은 상상도 안가는 일이겠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행은 아직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에도 폭행사건을 두 건 정도 상담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전형배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는 "폭력, 폭언 등 인권침해를 한 고용주에 대해서 고용허가제 사용을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인권침해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업장 변경 제한 둘러싼 논란...대안은 없을까? # 수아르디(인도네시아)씨는 임금이 몇 달째 밀려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사업장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사업주도 수아르디 씨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을 안줘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한다.
# 파잔(스리랑카)씨는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 고용안정센터를 찾았으나 폭행사실을 입증해야 업체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증언내용이 달라 폭행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고용안정센터의 입장이었다. 결국 파잔 씨는 사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도 업체변경을 할 수가 없었다.
# 조조원신(버마)씨의 경우는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기한을 넘겨 미등록이 될 처지에 놓인 경우다. 그는 “내 잘못도 아닌데 미등록이 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해요. 나처럼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법이 바뀌어야 해요”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임금체불과 폭력 외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서 가장 불만인 점은 사업장 이동 제한 문제다. 즉,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처럼 본인이 원하는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농축산업, 어업 등 5개 업종 가운데서 계약을 맺고 한국에 머무르는 3년간 타 업종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같은 업종 내에서의 이동도 3회 이내로 제한돼 있다. 또한 업체 이동 신고 후 2개월 이내 직장을 구해야 한다. 이런 엄격한 조항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이 시민단체 등의 지적이다.
원칙적으로는 사업장 변경을 3번까지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변경 사유가 사업주의 계약해지, 휴업, 폐업, 임금체불, 폭력에 의한 것이라야만 한다. 모두 인권침해 혹은 사업주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이주노동자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서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가 없는 셈이다. 특히 마지막 3번째 사업장에서는 더 이상 사업장을 옮겨선 안 되므로 임금체불,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강제근로의 위험을 떠안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일을 했어도 사업주가 3번 바뀌면 사업장 변경을 3회한 것으로 행정 처리돼 애꿎은 이주노동자만 피해를 입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사업장 변경을 위해서는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업체변경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양혜우 전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소장은 "노동자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사업장을 변경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사업장에 묶여 있다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업종 변경이 자유로우면 선호 업종에만 노동자들이 몰릴 우려가 많아서다. 또 기업 간 기능인력을 빼가는 것을 방지하고, 내국인 고용 기회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선호 업종에만 노동자들이 몰릴 경우, 노동자들을 유입하는 취지가 퇴색되고 내국인의 고용 기회를 앗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허가제를 인권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설 교수는 “이주노동자로 인해 피해를 받는 한국인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며 “가뜩이나 힘든데 이주노동자 때문에 더 힘들다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고용허가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내국인의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창용 전 노동부 인력정책과 사무관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자유로워지면 그만큼 한국인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인권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인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하면서 내국인 인력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이에 대해 정정훈 공익변호사는 “사업장 이동 제한은 기본적으로 인권 침해의 소지를 갖고 있으며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분쟁거리가 돼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가 있다”며 “무조건적인 제한보다는 동일한 지역과 동일한 업종 내에서는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완화'에 무게 중심을 둔다면 내국인 고용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도한 송출비용이 장기 체류 양산해...정부가 적극 해결해야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첫 단추인 송출과정에서부터 브로커에 의해 과도한 송출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김해성 대표는 “산업연수생제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외국인근로자가 부담하는 비공식 입국비용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고 말했다.
송출비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한국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장기체류를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노협 우삼열 대표는 "과거 연수생 비리에서 발생했던 송출비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과도한 송출비용을 내는 국가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이 과도한 송출비용이라는 악재를 불러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중요한 약속, 근로계약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할 회사와 본국에서 근로계약을 맺은 후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서는 매우 중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와 동일한 근무조건에서 일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노협이 조사한 '고용허가제 시행 5주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계약내용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과 달라진 점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으로 '잔업 시간에 대한 임금 지급을 안한다', '기본급에서 공휴일 및 휴일의 임금을 공제한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해도 기본급만 준다' 등의 급여 관련 사항과 '휴가가 없다', '근로계약보다 쉬는 날이 적다' 등의 휴일, 휴식 관련 사항이 주로 언급됐다. 그밖에 '계약서에 써 있는 것과 반대로 한다', '점심시간이 없다' 등의 비상식적인 문제점을 포함한 응답도 발견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입국 전 맺은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는 응답은 26.6%에 불과했으며 '일부만 이해했다' 또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각각 49.5%와 11.6%로 나타났다.
양해우 전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소장은 "근로계약 내용에 대해 노동자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는 것"이라며 "근로계약서의 내용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야 하는 것은 물론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