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강국 레인보우 코리아 ◆

"고향인 인도네시아에 계신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세요. 하루빨리 나으시면 좋겠어요."

부산 서면 아이온시티 지하 1층에 위치한 다문화 레스토랑인 `레인보우 스푼`에서 만난 박현아 씨(38)는 인도네시아 이름인 `에미`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했다.

혹시나 인터뷰가 어렵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박씨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었다. 실제로 국적을 변경해 한국 사람이기도 한 박씨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몇 살이라는 대답 대신 `쥐띠`라며 내일 모레면 마흔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2010년 새해 소망을 묻는 질문에 박씨는 "할아버지 나이가 올해 87세인데 많이 아프시다"며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며 활짝 웃었다.

박씨는 "부모님도 나이가 벌써 60대 후반이라 허리 등 이곳저곳이 아프다"며 "매월 생활비를 보내드리지만 자주 가보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11년이나 됐지만 그가 고향 인도네시아에 간 것은 딱 세 번이다. 박씨는 "자주 전화하지만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며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가족이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던 것도 잠시, 박씨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번졌다. 명호와 두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박씨는 아들 자랑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큰아들인 명호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막내아들인 두호가 내년이면 학교를 가는데 형인 명호가 많이 돌봐줘서 걱정 없이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명호는 성격이 좋아 다른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친구도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큰아들이 입학할 땐 혹시나 다른 외모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보통의 한국 아이들보다 친구가 더 많다"며 "명호는 수학을 아주 잘해 전국수학경시대회 같은 대회에도 많이 나갔다"고 말했다. 박씨는 "특히 바쁜 부모를 대신해 담임 선생님이 명호를 잘 챙겨줘 고맙고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셋째를 낳을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한국에서 아이를 한 명 더 키운다는 것은 엄청 돈이 많이 들고 힘든 일이라 이제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들 키우는 데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며 "요즘 한국에서 출산율이 낮다고 문제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교육비만 줄여도 출산율이 많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부산 영도에 있는 한 어망회사에 기술을 배우러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박씨는 한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애국자`다.

"94년 기술을 배우러 1년 동안 한국에 연수왔는데 한국사람들이 너무 잘 해줘서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는 박씨는 "특히 한국 남자들이 잘 생겨 한국을 사랑하게 된 것도 있다"며 활짝 웃었다. 회사에서 잘생긴 오빠(지금의 남편)를 만나 연애했고 박씨는 1년 뒤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게 됐지만 둘은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박씨의 남편은 1년 뒤 다시 인도네시아로 건너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한국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자꾸만 올라가는 물가와 비싼 사교육비 등 다른 한국 아줌마들이 고민하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며 "2010년 새해에는 한국 경기도 좋아지고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 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