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 5세 여야 은지(가명)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곁을 지키던 보육원 교사는 “신나게 뛰어 놀더니 오래 잔다”고 말했다. 옆에서 나누는 대화에 잠에서 깬 은지는 “이모~”라고 부르며 교사 품을 파고들었다. 교사는 “어머니가 몽골인이라 여기 올 때만 해도 ‘이모’ 소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는 많이 늘었네요”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해체가 급증하면서 은지와 같은 처지의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아 각국 사람 간에 태어난 혼혈아)들도 크게 늘고 있다. 2008년 다문화가정의 이혼건수는 1만1255건으로 전체 이혼의 9.7%에 달한다.

지난 2002년 전체 이혼 14만4910건 중 1.2%(1744건)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건수로는 6.3배, 비중으로는 8.1배 늘었다. 국내 다문화가정 수는 16만7090가구(2009년5월 현재)로 전체 1691만7000가구(2008년말 현재)의 1.0%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다문화가정 해체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다문화가정의 해체로 방치되는 코시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정만 있을 뿐이다. 2004~2008년 이혼한 다문화부부 2만1551쌍 중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는 2004쌍. 전문가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체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집을 지키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동양육시설에 보내진다. 말도 통하지 않는 어머니의 나라로 보내져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은지는 지난 2006년 몽골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하지만 은지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모녀를 부탁했지만 은지의 할머니는 “재수 없는 모녀”라며 이들을 내쳤다.

은지처럼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 코시안들은 확인된 사례만 63명. 아이에게 미칠 해를 우려해 취재를 거부한 시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장애와 지체장애가 있는 한국인 아버지와 동남아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A양은 2006년 어머니의 가출과 동시에 영남 지역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2005년 3월 지체장애를 안고 사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B양은 가정불화로 부모가 헤어지면서 출생 8개월만에 충청 지역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호남 지역 한 보육원의 C양 남매도 어머니가 정신이상 증세로 본국인 필리핀으로 돌아가면서 맡겨진 사례다. 전국의 18개 ‘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쉼터’에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피신한 결혼이주여성 232명과 그들의 자녀들이 머물고 있다.

해체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대부분이 빈곤 속에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권미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은 “한국 국적의 아이를 키우는 이주여성의 국적취득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희 베들레헴어린이집 원장수녀는 “해체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시설과 전문 인력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버들기자 oisea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