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양사면의 김용덕씨(78·가명)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손자 준호(14·가명)의 학비 마련이 막막해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준호는 13년 전 이혼한 자식이 낳은 손자로 젖먹이 때부터 김씨가 부모를 대신해 키웠다. 2,970㎡(900평) 농사로 어렵사리 초등학교까지는 뒷바라지했지만 중학교는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준호가 배정 받은 강화읍내 중학교까지는 통학이 어렵기 때문에 읍내에 방을 얻어 줘야 한다. 하지만 당장 교복과 학습교재 살 돈조차 없는 김씨로서는 아득하기만 하다. 김씨의 소득이라고는 논농사에서 나오는 조수입 300만원에 경로연금 월 14만원이 전부다. 부수입원인 공공근로도 겨울철이라 끊긴 상태여서 지금은 생계유지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준호 앞으로 매달 30여만원의 기초생활지원비가 나오지만 준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써야 할 비용조차 충당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얼마 전 고장 난 보일러를 수리하지 못해 장작으로 군불을 때고, 전기장판을 이용해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 속에 가장의 이혼과 가출이 늘면서 가족이 해체돼 어린 손자녀를 고령의 조부모가 돌보는 조손가족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손가족의 가구 수는 2001년 4만8,000가구에서 2008년 6만4,000가구로 증가했다. 특히 농촌지역의 조손가족 발생률이 도시보다 2배 이상 높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2003년 발표한 ‘농촌 여성노인가구의 손자녀 양육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농촌지역의 조손가족 발생률은 0.7％로 도시지역(0.3％)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도시의 가족 해체로 인해 손자녀가 농촌의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비율이 무려 70.6％에 달한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 부부의 이혼 등에 따른 가족 해체까지 감안할 때, 조손가족이 농촌지역에 집중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조손가족 증가가 농촌 고령자의 절대적 빈곤을 심화시키고 가난의 대물림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여성부가 2007년 전국 조손가족 6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부모의 절반가량인 47.6％가 70세 이상 고령자였다. 월 평균 가구소득은 ▲50만~70만원 미만 31％ ▲30만~50만원 24.3％ ▲70만~100만원 26.7％로 전체 조사 대상가구의 절반이 넘는 55.3％가 70만원 미만의 생활비로 근근이 한달을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득이 낮은 고령의 조부모가 어린 손자녀를 책임질 경우 경제적·육체적 부담이 가중돼 생활고는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어린 손자녀 역시 조부모의 보육 및 학습지도의 한계로 인해 사회심리적 적응문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손가족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극히 취약한 상황이다.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 조성은 박사는 “2008년을 기준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조손가족 비율은 11％에 불과하고 나머지 89％는 서류상 아이들의 부모가 경제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지원을 못 받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실태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박사는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조손가족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지원체계 없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한부모가족지원법·양육보조금지원제도 등을 통해 일부 생활비를 조부모에게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1개 광역지자체와 13개 기초지자체에서 조손가족 지원조례를 제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나 대부분의 광역지자체들은 여전히 소극적인 상황이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이영석 박사는 “(가칭) 조손가족지원법을 마련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부모와 손자녀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박사는 “특히 농촌지역의 경우 다문화가정의 해체로 인한 조손가족 증가가 집중될 가능성이 큰 만큼 주거개선, 교육안전망 확대, 의료서비스 지원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화=이경석 기자 ks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