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꿨던 20대 베트남 여성이 한국땅을 밟은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는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베트남 여성은 한국인 남편의 정신병력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의사소통은커녕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국땅에서 남편만 의지했던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신병력 40대 남편에 흉기찔려 숨진채 발견
20세 나이로 현지 결혼 후 지난 1일 입국
8년째 정신질환 남편 "환청 들려 범행" 진술


8일 오후 7시 40분께 부산 사하구 신평동 10평 남짓한 주택에서 베트남인 A(20) 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의 얼굴과 몸엔 맞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와 부부싸움을 하던 남편 장 모(47) 씨가 주먹과 발로 A씨의 얼굴 등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후 부엌에 있던 흉기로 A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귀신이 아내를 죽이라고 말하는 환청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 7일. 국제결혼회사를 통해 베트남으로 신부를 찾으러 온 장씨와 만난 다음 날 A씨는 장씨와의 결혼을 결정했다.나이는 많았지만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꿈꿨기 때문이었다.

이후 남편이 먼저 한국에 들어왔고 결혼 수속 절차가 남아 있던 A씨는 일단 베트남에 남았다. 지난 4월 24일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친정 식구들에게 인사를 올린 A씨는 지난 1일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고 둘만의 신혼생활이 시작했다. 한국말도 '오빠' 등 몇 개 단어밖에 몰라 남편과의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A씨에겐 남편이 한국에서 유일한 지인이었다.

하지만 A씨는 남편의 정신병력을 정식 결혼 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베트남에 돌아오기 며칠 전 정신질환 증세로 병원에 5일간 입원했었던 남편은 이미 8년 전부터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약을 복용해 왔던 것. 지난 2005년 7월에는 환청이 들린다며 부모를 폭행해 57일간 입원치료를 받은 기록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서 한번 잘 살아 보자고 다짐했을 A씨.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결국 자신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남편 손에 의해 이날 처참히 살해당했다.

A씨를 살해한 남편 장씨는 범행 후 집을 나가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치안센터로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방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장씨를 치안센터로 오도록 유인해 붙잡았다.

며느리의 살해 소식을 들은 장씨의 모친은 "8년 전 아들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가 우울증을 앓더니 정신질환 증세까지 보였다"며 "결국 아들이 국제결혼 회사를 통해 장가를 갔는데 결혼을 해서 '약을 먹으면 아내가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며 아들이 스스로 약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 어머니는 "며느리를 딱 한번 봤지만 둘이 잘 살기를 바랐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사하경찰서는 9일 베트남인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장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화선·황석하 기자 ss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