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바이러스` 세계의 문화예술교육 ① ◆

카라카스시 빈민촌 사리아에 위치한 `엘 시스테마` 교육센터에서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음악학교 교사인 레나르 아코스타는 유년시절 빈민촌의 문제아였다. 소매치기와 마약 거래로 9번이나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무료 음악교육시스템 `엘 시스테마`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배우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그는 처음 악기를 받았을 때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아코스타는 "저한테 악기를 맡기고도 도둑맞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바보가 있다니 놀라웠다"며 "손에 잡힌 클라리넷 촉감이 총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회상했다.

베네수엘라는 인구 2640만명 중 80%가 빈민으로 청소년 범죄율이 높다. 하지만 엘 시스테마(El Systemaㆍ베네수엘라 청소년 및 아동 오케스트라 국가시스템)가 빈민가 아이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전직 문화부 장관이자 경제학자, 오르간 연주자인 아부레우 박사는 `음악은 사회 개혁 도구`라는 소신으로 이 시스템을 창시했다. 악기를 배우면서 자아 실현 방법을 터득한 아이들은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 출신 학생 90%가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다. 대학 진학률이 높다.

초창기 엘 시스테마는 맞벌이 부모들의 강력한 지지로 급성장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방치되던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면 안심이 됐다.

아이들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설립 3년 만에 정부 산하기관이 됐다. 예산이 책정됐고 장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기업 후원금을 포함한 연간 예산은 2900만달러로 급식과 의료서비스까지 챙기고 있다.

엘 시스테마 출신 학생이 교사가 돼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센터도 늘어났다. 현재 전국 204개 교육센터에서 3세 이상 청소년 35만8000명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 중 70%가 빈민가 지역 출신이며 감옥에 수감 중인 청소년과 장애아로 교육 대상을 확대했다.

에두아르도 멘데츠 교육 담당 이사(30)는 "오케스트라는 최저 비용으로 아이들 삶에 영향을 준다"며 "축구 경기는 24명의 아이밖에 지도하지 못하지만 클래식은 축구장 4분의 1 크기에 150명을 수용해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빈민가 출신인 멘데츠도 엘 시스테마를 통해 인생 방향을 찾았다. 8세에 입단해 바이올린을 배운 후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약했다. 변호사 자격을 딴 후 20대에 엘 시스테마 이사에 올랐다.

올해 LA필하모닉 음악감독에 오른 20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28), 17세에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단원이 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스(24)도 이 시스템 출신이다.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에 불과한 베네수엘라가 220개 오케스트라ㆍ합창단을 거느린 `음악 강국`이 된 이유도 엘 시스테마 덕분이다.

빈민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엘 시스테마는 10년 후 연간 학생 100만명을 교육하는 게 목표다. 정부도 2007년 11월 `미션 뮤지카` 정책을 수립해 청소년 오케스트라ㆍ합창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악기를 배울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다.

숱한 어려움을 견뎌낸 엘 시스테마의 경쟁력은 `봉사 정신의 선순환 구조`에 있다. 무료 음악교육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려 한다.

바이올린과 지휘자 교육에 장학금까지 지원받은 교사 알레 한드로 무뇨스도 그가 받은 혜택을 되돌려주기 위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게 엘 시스테마 정신"이라며 "여기 오면 암울했던 내 유년시절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학생이 많아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낡은 강당에서 아이 50여 명에게 모차르트 교향곡 31번을 가르치는 그의 지휘 동작에 힘이 넘쳤다. 아이들은 팀파니를 쿵쾅쿵쾅 때리고 힘차게 트럼펫을 불며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게 다 퍼붓고 나면 세상에 대한 분노가 누그러진다.

[특별취재팀＝베를린 = 윤상환 기자 / 카라카스ㆍ뉴욕 = 전지현 기자 / 파리ㆍ런던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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