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바이러스` 세계의 문화예술교육 (2)◆

루브르박물관에서 그림을 그리며 체험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14세 소년 압델카데르는 7년 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왔다. 지금은 파리 근교 크레테이시 파스퇴르 중학교의 졸업을 앞둔 4학년. `도시의 미술`을 주제로 도시 속 숨은 미(美)를 사진에 담아본 야외수업을 끝으로 지난달 24일 미술 수업이 막을 내린 게 못내 아쉽다. 한 학기 동안 교실은 파리 미술관에서, 고전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또 거리로 계속 바뀌었다. 학교에 마련된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어 그림을 그리는 실습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직 알제리에서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곳에선 이민자 자녀, 저소득층 자녀라고 해서 어떤 차별도 없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서 천장에 닿을 만큼 아득한 크기의 그림을 봤을 때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제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착실히 미술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에콜 드 보자르(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하는 모습도 그려본다. 가난하다고 교육 테두리에서 밀려나는 일이 없는 나라에 살게 된 것이 꿈만 같다.

이민자 가정과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서는 문화예술 교육을 위한 다양한 체험수업이 이루어지지만 학생들은 학교에 돈을 내지 않는다. 지방마다 교육부의 문화예술 교육 담당 부서(DAAC)와 문화부의 지역문화사업국(DRAC)이 교육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프로그램 수업(PAC)을 통해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갖가지 체험을 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충당되고 미술, 음악 같은 예체능 과목은 역사, 프랑스어 등의 과목과 자연스레 접목된다.

소외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PAC의 활용에 적극적이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앞장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격차해소 목적이 가장 크다.

크레테이 지역 DAAC 브리지트 보셰 국장은 "문화 향유 기회는 가정환경 영향이 크기 때문에 프랑스는 교육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최소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많은 이민자가 함께 어울려 사는 만큼 프랑스의 문화유산을 접하는 것은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프랑스 역사를 배우는 가장 좋은 교과서도 된다"고 덧붙였다.

바다 건너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2월부터 16~25세 젊은 층이 무료 공연 관람을 할 수 있는 `나이트 레스 오디너리` 정책의 닻을 올렸다. 박물관 정책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에는 영국 공연의 자존심인 `웨스트 엔드`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 영국 전역 200여 개 극장에서 젊은이들이 공연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2년간 250만파운드(50억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비싸고 어렵다는 이유로 공연을 멀리하는 젊은이들을 유인하는 한편 소외계층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려는 목적도 있다.

앤디 번햄 영국 문화부 장관은 정책을 시행하며 "문화의 힘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며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기회가 열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창의문화교육진흥원(CCE)은 청소년들이 수업시간 혹은 방과 후에 주중 5시간 공연, 전시 등 고급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파인드 유어 탤런트` 프로그램도 사회적 약자들이 거주하는 10개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문화적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숨겨진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CCE 원장인 폴 콜라드 씨는 "아이들이 어떤 배경이나 환경에서 자라든지 문화에 대한 입맛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정책의 목적을 설명했다.

2008년 CCE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모와 가정환경에 따라 자녀들의 문화체험이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부모가 단순노동직일 때 70% 학생들이 일주일에 공연 전시 관람 등의 문화체험이 3시간 이하로 조사됐다. 심지어 52%는 문화체험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부모가 학사 학위를 가진 전문직의 경우 80% 학생이 5시간 이상 문화체험을 하며, 27%는 10시간 이상이었다.

보고서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스포츠게임을 즐기는 부모들은 자녀가 고급 예술을 접할 때 자신과 유대감을 잃을까 두려워 예술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나쁜 사이클이 대를 이어가면서 가정환경은 사회 양극화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폴 콜라드 원장은 "서머싯에 있는 한 10세 소녀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지만, 레슨비과 악기까지 지원해 주겠다고 했음에도 부모 동의를 받지 못해 꿈을 접어야 했다"고 했다.

탄광 노동자의 아들 빌리 엘리엇이 발레리노가 되어 날아오르는 영화 같은 해피엔딩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은 가난 때문에 꿈조차 못 꾸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취재팀 = 베를린 = 윤상환 기자 / 카라카스ㆍ뉴욕 = 전지현 기자 / 파리ㆍ런던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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