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많고 동북지방식 음식점 즐비

2007년 방문취업제 시행이후 부터 본격 조성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서울에서 구로구 가리봉동 다음으로 중국동포(조선족)가 많은 '다문화 거리'로 동대문에서 동묘까지인 왕산로 구간이 꼽힌다.

이 거리에는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과 4번 출입구를 중심으로 옌볜(延邊)자치주, 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 지방식으로 구운 양 꼬치 등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2002년부터 한두 곳씩 생겨난 이들 음식점은 2007년 급속히 늘어나 지금은 모두 15개에 이른다. 인근 청계천 쪽 신발 상가에도 서너 곳이 있다.

이들 음식점은 대개 붉은색 바탕에 한자로 쓴 양 꼬치(羊肉串.양로우촨) 간판을 내걸고 임대료가 비교적 싼 2층에 모두 자리 잡은 게 특징.

동대문에서 동묘 쪽 100m 구간에만 대상해양육관점(大上海洋肉串店)을 비롯해 백년구육관(百年狗肉串)점, 연길원보양육관, 연길냉면, 동대문양육관점, 연변양육관점, 연길양육관점 등 모두 8개 음식점이 자리잡고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창신동 쪽 뒷길에는 인도와 네팔 음식점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데우라리(Deurali) 네팔' '페와(Fewa)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어 인도식 카레와 요구르트, 인도식 빵인 '난' 을 맛볼 수 있다.

<연변양육관점, 에베레스트 모습>

옌볜식 음식점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손님이 비교적 많은 곳으로 많은 주민이 동대문양육관점을 꼽는다.


이곳의 메뉴판에는 한자로 각종초채(各種秒菜. 여러 종류 채소 볶음)와 쓰촨훠꿔(四川火鍋. 쓰촨 식 매운탕)란 글씨도 작게 쓰여 있다.

동대문양육관점 주인은 중국 동포로 한국에 귀화한 이준수(47) 씨. 2003년 문을 연 이곳은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 덕분에 손님이 몰려 2008년부터 4층 한 층을 더 빌려 지금은 2층과 4층을 쓰고 있으며 약 10명의 종업원이 일한다.

이 씨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한국에 일하러 온 중국동포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소문이 나면서 한 5년 전부터는 한국 손님이 더 많다"며 "손님 가운데 열에 일곱 가량은 한국인이고, 대개 중국 관련 여행사 직원이나 회사원 등이 자주 온다"고 소개했다.

특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는 이들 음식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

이 씨는 "한국 사람들은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지내지만, 중국동포들은 모처럼 쉬는 날이면 이곳에 모여 같이 지낸다"며 "특히 추석이나 설은 연중 가장 바쁜 대목"이라고 말했다.

주 메뉴는 양고기 꼬치구이와 '샤부샤부'. 양 꼬치는 양고기 살점과 기름을 번갈아 우산 살처럼 생긴 쇠꼬챙이에 꿰어 통에 담긴 숯불에 구워 먹는 것으로 5-6점의 고기를 꿴 꼬치 10개가 1인분(1만원)으로 양이 넉넉하다.

양 꼬치가 숯불에 다 익으면 고추와 들깨, 참깨 등을 섞은 가루에 중국 북부지역에서 나는 풀의 씨앗으로 박하와 고수가 섞인 듯한 향이 나는 '쯔란'을 뿌려 먹는 방식이다. 양고기 외에도 돼지 염통이나 간 등 내장과 오징어와 새우 같은 해물도 꿰어 구워 먹는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샤부샤부. 중국에서 나는 작고 매운 고추를 비롯해 매운맛이 강한 씨앗과 구근, 후추 등을 넣어 시뻘건 색의 '홍탕'과 게와 새우, 바지락 등으로 국물을 내 시원하고 담백한 맛의 '백탕'을 태극 모양으로 가른 세숫대야 크기의 그릇에 담아 끓인다.

여기에 얇게 썬 양고기와 버섯과 감자, 당면, 청경채 등을 넣어 익힌 후 고소한 맛을 내는 '마장'에 찍어 먹는다. 특히 중국 동북 삼성 지역에서 자주 먹는 건두부와 언두부가 일미다.

옌지(延吉)가 고향인 이씨는 "고향에서도 지역별로 맛이 조금씩 다르듯 이곳도 고향 맛과 똑같다고 할 순 없다"며 "고향에는 사슴고기나 토끼고기, 개구리 고기 등을 쓸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재료를 구할 수 없어 그런 요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년구육관 모습>


이들 음식점은 2002년부터 한두 곳 생긴 후 2007-2008년 한꺼번에 대여섯 개가 들어섰다는 게 주민의 설명이다.

지난 2007년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방문취업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한국으로 온 중국동포 수가 15만명에서 2008년 말 39만명으로 급증하자 이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도 잇따라 들어선 것으로 동포 관련 단체들은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다 창신동 쪽으로 재개발을 앞둔 주택에 중국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

창신동 쪽에는 근처 재래시장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가내 봉제 공장이 많아 중국 동포들이 다수 일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지난해 가을에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미등록(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를 단속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도 종종 이곳에서 단속 중단을 촉구하는 거리 벌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 들어서는 것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다"며 "이들 식당 덕분에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 유동 인구가 늘어나 주변 상인들이 좋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동포와 음식점이 들어선 것을 반기지 않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분식점 주인은 "중국 동포들이 많이 몰려와 살지만 돈은 쓰려 하지 않고 가장 싼 것만 찾는다"며 "붉은 간판에 중국식 장식을 하는 바람에 차이나타운 같은 분위기가 생겨 한국인들이 찾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부동산업소 관계자는 "창신동 일대가 재개발돼 2013년부터 입주를 시작하면 현재 82㎡(약 25평) 당 월 200만원 선인 임대료가 올라 연변식 음식점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도 경제가 발전하면 일자리를 찾아온 중국 동포들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외동포 행정 업무 대행하는 천막 사무소>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