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 이주민들, 혜화동성당서 매주 일요일 미사

성당앞에는 벼룩시장도 서..필리핀 음식 등 다양한 생필품 거래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는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이나 이주 노동자들이 그리운 고향 음식을 맛보고 소식을 듣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매주 일요일 이곳에는 필리핀 출신의 노점상들이 장터가 선다. 한국의 곤계란(부화 직전 상태의 계란)이라 할 발롯(Balot)과 필리핀식 치즈 케이크인 카사바(Cassava), 필리핀 스타일로 만든 소시지, 물고기 등을 맛볼 수 있다.

<혜화동성당 앞 벼룩시장 풍경>


일요일마다 서는 이 벼룩시장은 11년 전 혜화동 성당에 필리핀 신부가 와 필리핀 고유어인 타갈로그어로 미사를 집전하면서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 1시30분 필리핀외방선교회 알빈 파란타(45) 신부가 집전하는 이 미사에는 800여명에서 1천여 명이 참석한다. 경기도 안산시와 광명시, 의정부시, 포천시 등지에서 사는 필리핀인들이 2-3시간이 걸려 찾아온다고 파란타 신부는 전했다.

파란타 신부는 10년간 한국에서 선교한 글렌 신부에 이은 두 번째 필리핀 사제. 그는 일요 미사에 참석지 못한 이들을 위해 주중에도 매일 오후 8시30분 미사를 집전한다.

그는 "대부분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인에게는 모국어 미사가 가능한 혜화동성당이 각별한 의미를 준다"며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고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특히 미사 후 열리는 벼룩시장은 필리핀 사람들끼리는 '제2의 마닐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3일 성당 쪽 50여m 도로변에는 10여 명의 상인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채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갖가지 물건을 내놓으며 벼룩시장을 이뤄 오가는 필리핀인과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팔았다.


<필리핀에서 수입한 곤계란 등 판매 물품>

필리핀인 외에도 한국인, 미국과 유럽에서 온 이들도 찾아와 구경하거나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사진을 찍으며 휴일을 즐겼다.

근처 택시 정거장에는 타갈로그어로 쓴 '신속한 송금을 하려면 휴일에도 문을 여는 웨스턴 유니온 은행을 이용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웨스턴 유니온 은행 등은 차량을 배치해 일요일에도 송금 등 은행 업무를 본다고 파란타 신부는 소개했다.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된 광고판>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상인은 "고향 음식을 사갈 뿐 아니라 서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다"며 "상인 대부분은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귀화한 이들로 법적으로는 한국인"이라고 전했다.

이곳은 한때 종로구청의 노점상 단속에 따라 사라질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요일에만 열고 보행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상인 수를 줄이며, 혜화동성당 쪽 구간만 노점을 여는 등 '자율적 조치'가 이뤄지면서 더 문제가 확산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필리핀인 외에도 한국인과 외국 관광객이 찾으며 명실상부한 다문화 거리를 이루는 만큼 존속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힘을 얻고 있다.

이곳 노점상들의 단체인 한비(韓比)상인연합회 박일선 회장은 "노점상 수를 15명으로 한정했고, 이들 상인은 모두 배우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봐야 한다"며 "다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낸다는 여론이 나오면서 단속은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구청 관계자들이 찾아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물건 대부분은 필리핀에서 중간상이 직수입한 것"이라며 "경기도 안산에 비슷한 거리가 있지만, 서울에서 필리핀 문화를 느끼기로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출신의 이주여성으로 한국에 귀화해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전화 상담 일을 하는 이모씨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푸근하다"면서 "이곳이 계속 열려 다문화 교육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혜화동 성당앞 길거리에서 흥정하는 상인>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