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못간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15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신혼 8일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의 부모와 사촌언니가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관을 부여잡으며 오열하고 있다. <<지방기사 참조>> 2010.7.15 wink@yna.co.kr

결혼이주 여성ㆍ이주노동자의 잇따른 비극적 죽음

이주여성 첫 지방의원 당선..이주아동 교육에도 관심 쏠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2010년 다문화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 의해 스무 살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이 피살됐는가 하면 11월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정부합동 단속으로 적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숨지거나 부상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문화 유권자의 목소리를 선거에 반영하기 위한 '다문화 유권자 연대'가 출범해 국내 다문화인들의 정치적 조직화 가능성을 제시했고, 실제로 몽골 출신 결혼이주 여성은 경기도 도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가 잇따라 등장했으며 이주아동의 교육과 의료권 등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 베트남 신부 정신병력 남편에게 피살

올해 다문화 분야에서는 베트남 여성의 피살 사건이 가장 충격적인 일로 꼽힌다.

지난 7월 8일 부산 사하구 신평동에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 씨가 자신의 집에서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한국에 온 지 불과 8일 만의 일.

탓티황옥 씨 피살 사건은 그간 쌓였던 국제결혼의 잘못된 관행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게 이주여성 관련 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주노동자 합동단속 대응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인턴기자 = 14일 오전 서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공동행동 공동주최로 열린 'G20 관련 이주노동자 합동단속 대응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0.5.14 doobigi@yna.co.kr

캄보디아 정부가 지난 3월 자국민이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한 조치가 잘못된 관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자국에서 한국인 남성이 다수의 캄보디아 여성을 만나 신붓감을 고르는 '집단 맞선'이 끊이지 않자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을 특정해 국제결혼 허가를 잠정 중단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제결혼에서 인권 침해적 요소를 고쳤더라면 베트남 여성의 딱한 죽음을 예방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국제결혼의 어두운 관행과 결혼이주 여성의 어려운 삶에 관심을 두게 됐고, 정부도 신속하게 사건을 수습하고 반한 감정이 확산하지 않도록 했으며 예방책을 마련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베트남 여성연맹과 '국제결혼 건전화 및 여성발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결혼이민 예정자를 대상으로 '입국 전 사전정보제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불법 결혼중개업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결혼중개업법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국제결혼 희망자는 중개업체에 건강진단서, 직업증명 서류, 범죄경력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중개업체는 제출받은 증빙서류를 근거로 개인신상정보 확인서를 작성해 결혼 상대방의 언어로 번역, 제공하도록 했다.

◇G20 정상회의 앞두고 불법체류자 대대적 단속

G20 서울 정상회의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기회가 됐지만,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려운 한때를 보내야 했다. 정부가 국내 불법체류자의 자진출국을 유도하는 '출국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6월부터 합동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해 도망을 치다가 다치거나 단속반원과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하는 일이 잇따랐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노동자는 단속반원을 피해 공장 건물 2층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려다 추락해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닷새 만에 숨졌다.

그러나 불행한 죽음의 이면에는 희망의 싹도 움텄다.

◇다문화 유권자 연대 출범

다문화 유권자 운동 선언식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27일 서울 종로구 YMCA에서 다문화유권자연대 운동 선언식이 열리고 있다. 다문화 유권자 연대는 소속원들의 의료, 보육, 교육 등 다양한 의제를 지방자치단체 선거 후보자들에게 제안하고 선거후에도 이행 여부를 감시해 나갈 예정이다. 2010.5.27 jeong@yna.co.kr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문화 배경의 유권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결성된 '다문화 유권자 연대'(이하 다문연)가 그 중 하나.

지난 5월 27일 공익변호사그룹인 공감과 다문화가족협회, 서울 YMCA, 서울 YWCA, 세계선린회, 지구촌사랑나눔, 무지개청소년센터, 아시안프렌즈, 한국외국인지원단체협의회, 흥사단, 결혼이민자여성평등찾기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다문연을 꾸렸다.

다문연이 주로 한국인이 주도하는 시민단체로 구성됐다는 한계도 있지만,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한국 사회로 편입돼 투표권이 있는 다문화 유권자들이 정치적 주체로 나설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여러 정당이 지방선거에 다문화 출신 후보자를 여러 명 내세웠다. 그 중 몽골 출신 결혼이민 여성 이라(33) 씨가 경기도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정당과 정파를 떠나 다문화 가정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낸 일이었다.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에도 많은 관심

아울러 결혼이주 여성의 한국사회 적응에 치중했던 다문화 이슈의 무게 중심이 올해부터 이들의 자녀, 즉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교육으로 이동한 점도 의미가 각별하다.

대기업이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교육지원에 나서고, 시민단체와 지방자치 단체에서 다문화가정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설립도 잇따랐다.

LG가 다문화 가정 청소년 중 과학과 이중언어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사랑의 다문화 학교'를 열었고, 삼성은 결혼이주 여성과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과 방과 후 과외지도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다.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촌사랑나눔은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전문 초등학교를 임시 개교했고, 한국다문화센터는 현대차그룹 산하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문화가정 종합교육지원센터를 내년 3월 개원할 예정이다.

인천시교육청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립 '다문화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부산의 다문화 대안학교인 아시아공동체학교도 내년 3월 학력을 인정받는 정규 교육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 발의

Hope Kids 봉사 고교생들 이주아동 학습지도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명덕외고와 용인외고 등 수도권 5개 고교생 49명은 11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소재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 훈련센터에서 '서로 소통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주 아동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4월 발족한 다문화 봉사 고교생 모임인 'Hope Kids 찾아가는 공부방' 회원들의 주도로 열린 이날 행사는 훈련센터 1층에 설치된 지구촌 체험관에서의 몽골 문화 체험, 박정숙 KOICA 홍보대사(경희대 국제교육원 교수)와 이은숙 KOICA 지구촌 체험관장의 특강, '서로 소통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 제하의 분임 토의 등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자녀들의 학습을 돕고 있는 오현승(용인외고 3)군. 2010.8.11 photo@yna.co.kr

한나라당 김동원 의원은 외국인노동자 자녀의 교육과 의료혜택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지난 10월22일 국회에 제출해 주목을 받았다.

이 법안은 법적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이주아동이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 자격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학교 교육을 받게 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이 유엔(UN)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만큼 국내 체류하는 2만5천~3만명의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아동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이 법안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