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폴 드 저지 로아시아 사법분과위원회 의장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올해 6월 서울서 열리는 제14차 아시아ㆍ태평양 대법원장회의 준비차 방한한 폴 드 저지(Paul de Jersey) 로아시아(LAWASIA) 사법분과위원회 의장(호주 퀸즐랜드주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문화 국가로 변모해가는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2011.2.25 utzza@yna.co.kr

공존의 틀 마련…이민자 급증 우리 현실에 시사점

(서울=연합뉴스) 이웅 나확진 기자 = 1992년 호주 연방 대법원이 내린 `마보 판결'(Mabo Case)은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호주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고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극적인 노력으로 이해된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의 사법제도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판결이다.

유럽인들이 18세기 후반 호주에 이주하기 시작한 이후 호주 땅은 법적으로 `주인없는 땅'(테라 널리우스·Terra Nullius)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종전부터 대륙에 살던 토착민의 존재를 무시하고 유럽인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땅과 마찬가지로 간주했다.

당시 토착민에게는 토지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녔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토착민 운동가인 에드워드 마보(1936-1992)는 1982년 머레이섬에 살며 수천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토착민 메리암족(族)의 토지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고, 10년 뒤 호주 연방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호주의 `주인없는 땅' 개념은 폐기됐고 그동안 사실상 무시됐던 토착민들은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온전하게 주장할 수 있는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유네스코는 2001년 마보판결 관련 자료와 기록 등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호주에서 토착민과 유럽 출신 백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된 데는 마보판결의 선도적 역할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호주 사법부는 법 적용 과정에서 토착민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기 위한 특수법원과 전문판사를 두고 형벌을 정할 때 토착민 부족장의 자문을 구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통합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여건이 다르긴 하지만 호주의 경험은 최근 외국 이주민 유입이 늘면서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모해가는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인도 출신 부산외국어대 부교수(인도어과) 로이 알록 꾸마르(55)씨의 귀화 허가로 귀화자가 10만명을 돌파했으며, 2001년 2만5천여명에 불과했던 결혼이민자는 작년 14만명을 넘어섰다.

얼마 전까지 경제개발에 따른 이촌향도 현상으로 노인만 남았던 농촌은 이제 시집온 외국인 주부와 다문화 가정 신생아들로 활기를 되찾고 있으며, 귀화자들의 창성창본(創姓創本)으로 몽골 김씨, 길림 사씨, 태국 태씨 등 전에 없던 `새로운 가문'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연착륙하려면 귀화자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쉽게 적응하도록 다문화를 수용하는 국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는 사법제도가 제대로 운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4차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회의 준비차 방한한 폴 드 저지 호주 퀸즐랜드주 대법원장(로아시아 사법분과위원회 의장)은 "마보판결은 토착민의 권리를 중시한 상징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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