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잠재력에 매혹된 독일제 순한국인

<※편집자주 =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명에 달하며 한국 사회가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취업, 결혼, 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온 이주민들 중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뿌리를 내리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당당한 일원으로 활약하는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다문화시대를 열어가는 우리 이웃으로서 이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필두로 한국 사회에 안착한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매주 일요일 오전 송고한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독일제 순 한국인'. 그가 자기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의 독일 이름은 베른하르트 크반트, 현재의 이름은 이참이다. 어떤 이는 이한우, 혹은 '칼 토마'로 기억할 것이다.

귀화 외국인으로 최초로 공사 수장에 올라 화제가 됐던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바로 그다.

그는 1978년 종교 세미나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 곳에 눌러앉게 됐다. 한국의 매력에 빠져서다.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잠재력에 매혹됐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1년 만인 1979년 주한 외국인웅변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 그가 연설한 주제는 '한국은 희망의 나라'였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아주 독특하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외래문화가 들어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다"며 "한국이 앞으로 세계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당시 웅변 내용을 회상했다.

그는 다문화가정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한국 여성과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으나 결혼은 어렵지 않게 했다고 한다. 장모와 아내의 언니, 여동생들이 처음부터 그를 환영했다.

그는 "장인어른이 반대했지만 처음엔 몰랐다. 처가 식구들 만나는 자리에 항상 장인어른이 계시지 않아 바쁜 줄만 알았다"며 "어느 날 장인어른과 동네 어른들과 한 자리에 있을 때 한복 입고 큰절하고서 술 한 잔 마시고 한국 노래 부르니 마음을 여신 것 같다"고 전했다.

1986년 그는 한국으로 귀화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살 거 체류 신분이 외국인인 게 불편해서다. 그래서 그는 325번째 귀화인이 됐다.

명실상부한 한국인이 되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이한우(李韓佑)라고 지었다. 독일 이씨의 시조다. 한우는 '한국을 돕겠다'는 뜻이다. 한국인이 되고서 10여년 활동한 후인 지난 2000년엔 이참(李參)으로 개명했다. 외부인으로서 한국을 돕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그 이름만큼이나 한국을 많이 돕고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독일문화원과 여러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해성엔지니어링 대표 이사, 참스마트 대표이사, 빅웰 회장, 기아차 해외마케팅담당 고문 등 사업가ㆍ경영인으로도 활약했다.

방송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명절에 열리는 주한 외국인 노래자랑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뒤 각종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패널로 참여했다.

그러다가 1994년 드라마 '딸 부잣집'에 둘째 사위로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196㎝나 되는 큰 키에 푸른 눈의 외국인인 '칼 토마'가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듬해 1995년 그는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께서 세계화를 선포하니까 방송사에서 외국인 사위가 나오는 드라마를 만들 용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사회가 국제결혼과 외국인에 대해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게 되는데 이 드라마가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그는 이후 '천국의 계단', '제4공화국',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제5공화국'과 같은 드라마와 영화 '한반도'에서 개성 있는 연기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 서울시 홍보대사, 한식세계화추진단 위원 등을 지낸 그는 지난 2009년 7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선임됐다.

그는 "프랑스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 상임지휘자 자리를 정명훈씨에게 맡긴 것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이 자기 나라의 특징과 개성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라며 "귀화한 외국인이 한국이 좋다고 말하니 더 설득력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문화와 전통에 관심이 많다. 한국 음식과 전통가옥, 유교사상을 스스로 깊이 파고들기도 했다. 또 20여년간 '진돗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관광공사를 이끌면서 내세운 경영이념인 '삼관 오림'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묻어난다. 경영이념을 영어 약자로 '유식하게' 표현하는 여느 사장과는 달랐다.

삼관은 '관찰', '관심', '관계'라는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을, 오림은 '떨림', '끌림', '어울림', '울림', '몸부림'으로 한국 관광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뜻한다.

그는 "경영철학을 만들 때 한국적인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것을 만들고 싶었다"며 "삼강오륜에서 따와 만들었지만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와 경영개념이 다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여러 사고방식, 여러 문화와 철학을 받아들여 융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세계에 새로운 정신문화 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며 "그러려면 우리가 우리 문화의 가능성과 깊이를 먼저 깨닫고 우리 문화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문화 사회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발전할 좋은 기회"라며 "짧은 시기에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화 돼 가고 있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인식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