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남한강 옆에 자리하고 있는 충북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 인다마을. 마을
이장인 김상수(43)씨 집으로 한 외국 여성이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몰며 들어왔다. 김씨의
베트남 출신 부인인 누엔티 튀 짱(24)씨다. 얼굴색만 약간 다를 뿐 머리 뒤로 밀짚모자를 걸치고, 농사일을 위해 장화를 신은 모습은 농촌의 여느 아낙과 다르지 않았다. 오전에 버섯
하우스에서 일하고 돌아온 누엔티씨는 부엌에서 개밥을 내와 개들에게 먹인 후 능숙하게 점심식사를 차렸다. 한국에 온 지 6년째인 누엔티씨는 한국 음식도 혼자서 척척 만들 정도로 실력이 늘어 연로한 시어머니를 대신해 가사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누엔티씨는 “집에서 사용하는 한국 이름인 ‘진선미’가 더 익숙할 정도로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말했다.
50가구가 모여 사는 인다마을에는 김씨 부부를 비롯, 모두 5가구가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베트남 출신 부인이 있는 가정이 4가구, 중국동포 출신 부인이 있는 가정이 1가구다. 소태면에 30가구 정도의
다문화가정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인다마을은 다문화가정 비율이 높은 편이다.
김씨 부부는 지난 2006년 결혼해
아들 영재(4)군, 시부모 등 3대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부의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고, 김씨는 재혼이었지만 결혼 전에 모든 사실을 누엔티씨에게 알려서 이로 인한 갈등은 거의 겪지 않았다. 시부모는 결혼 전에는
외국인 며느리에 대해 걱정도 했지만, 지금은 막내 손자의 재롱을 보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다. 하지만 누엔티씨의 한국 생활 적응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결혼 초기에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도 곧잘 흘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용실에서 근무해 농사일도 쉽지 않았다. 누엔티씨는 “말이 잘 안 통하고, 한국 음식도 낯설어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며 “가족들이 곁에서 항상 챙겨줘 적응이 빨리 됐다”고 말했다.
2002년에 결혼해 한국 생활이 10년 가까이 된 민모(28)씨는 완전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중국동포인 민씨는 2001년 친척의 소개로 남편 최모(39)씨를 만나 1년 정도 연애를 한 후 결혼했다. 민씨는 “내가 중국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대도시인 지린(吉林)성 성도 창춘(長春)시 출신”이라며 “처음에는 농촌 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가 없어 외로움도 겪었지만 이웃들과 쉽게 어울리면서 한국 생활에 오래지 않아 적응했다. 한국에 시집온 지 2년 반 만에 국적도 취득하고
이제는 완전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다른 한국 가정과 마찬가지로 자녀의
교육문제다. 민씨는 “시골이어서
피아노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며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충주 시내로 이사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중에는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 누엔티씨와 같은 시기에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올해 초 집을 나갔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스무 살도 넘게 났던 이 여성은 5년 만에 결혼 생활을 포기했다. 몇 년 전에는 결혼하고 한국에 온 지 사흘 만에
신부가 사라지기도 했고 고부 갈등이 심해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곳도 있다. 이런 사례들이 나오면서 인다마을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있다. 기존 주민들과 어울리는 부녀회 등의 활동은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끼리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외부 사람과의 교류는 더 드물다. 인다마을의 경우에는 소태면 다문화가정
모임에도 참가하지 않고 있다. 올해 인다마을을 떠난 베트남 여성도 공장에 다니면서 알게 된 베트남 사람과 함께 도망쳤다고 한다. 결국 결혼
실패 사례가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주여성 입장에서도 결혼 생활이 예상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박성자 소태면 다문화가정 후원회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대부분 저소득 국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교육 수준이 낮지 않고, 개인적인 자질이 훌륭한 경우가 많아 단순한 농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충주 = 조성진기자 threemen@munh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