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 풋볼 한국계 선수인 하인즈 워드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다. 워드는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
정부는 얼마전 혼혈인이나 여성 결혼이민자 등에 대한 사회통합정책을 내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 결혼 이민자 등과 관련해 점차 이민법을 완화해 정책을 새로 다듬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워드의 일깨움이 아니더라도 발표된 통계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이미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결혼의 13.5%, 그 가운데 농어촌 남성의 35.9%가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대로 간다면 호주처럼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외국 이민을 받아들여 노동력을 확보하고 적정 인구증가율을 이어 가야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다문화주의’는 호주의 핵심 어젠다
호주 공영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s) 방송국은 언어의 박물관처럼 보였다. 드넓은 공간에는 각 언어별로 데스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방송국은 라디오에서 68종류, 텔레비전에서 60종류의 언어로 뉴스 등 각종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SBS는 다문화와 다언어 방송이라는 특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어 TV는 주 1회 또 라디오는 주 4회 방송되고 있다. SBS는 호주의 다민족·다인종 융합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현재 호주 인구는 약 2,000만명이다. 그 중 43%가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적어도 부모 중 1명이 외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8-1989년에는 전체인구 증가의 54.4%를 이민 인구가 차지했다. 2030년대에는 이민에 의한 인구유입이 유일한 인구증가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호주에서는 약 20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주에 있어서 다민족·다인종 융합정책은 국가 생존을 위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현재의 인구 구조로 볼 때 그 정책은 호주의 영원한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호주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주브리츠키 교수가 문화적 복수주의를 소개한 ‘The Questing Years’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그 뒤 1973년에는 다문화주의 개념이 소개됐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구성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보고서들도 잇따라 나왔다.
다양성을 통해 혁신과 창의성을 키운다
1989년 호주 정부는 ‘다문화의 호주를 위한 국가적 어젠다‘를 발표했다. 1999년 호주 다문화주의에 대한 새로운 아젠다가 나오면서 2000년에는 어젠다 실행을 지원하기 위한 ‘다문화의 호주를 위한 위원회도 설치되었다. 2003년에는 ‘다문화의 호주 : 다양성 안에서의 통합’으로 발전 되어 2006년까지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민으로서의 의무 ▲상호존중 ▲개인 각자에 대한 공정성 ▲모두를 위한 이익(다양성에서 파생되는 사회·문화·경제적 이익) 등 네 가지 원리와 ▲집단간 조화 ▲접근과 평등 ▲생산적 다양성 등 3가지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집단간 조화’를 위해 매년 3월 21일을 ‘화합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문화와 민족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접근과 평등을 위해서는 ‘다문화주의 사회에서의 공공서비스 헌장’을 1998년부터 제정해 적용하고 있다. 이 헌장에는 공공서비스 제공자들의 기본소양, 고객대응방법, 훈련, 정보축적, 모니터링 및 보고 등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구체적 실천을 위한 지침서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생산적 다양성’에서 다문화주의는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 자체가 호주의 귀중한 자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다문화주의가 사고의 다양성, 혁신과 창의성을 유도하는 요소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고 있다.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위한 철저한 연구·준비 필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5년 12월 크로눌라 지역에서 레바논계 호주인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 원인이야 어떻든 호주에서 다문화주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백호정책을 버리고 다문화주의를 도입해 수십 년간 노력해 왔던 호주정부와 국민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느슨해졌던 다문화주의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전 호주 퀸즐랜드 주에서는 보건당국자들이 병상에 환자용 성경을 비치해 두는 것이 비기독교들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치우도록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다문화주의 과용 사례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례는 다문화주의 실현을 위해 호주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생존을 위한 영원한 과제로서의 다문화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호주에서 폭넓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호주의 최대 전국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지의 그렉 셰리던 외신부장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중국 정육점, 한국 비디오가게, 인도 음식점 등이 나란히 영업하고 있다고 말하고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호주 시민권을 가진 어느 한국동포는“학교에서 소풍을 가 점심을 먹을 때 호주 부모는 그들끼리, 동양인은 동양인끼리 자연스럽게 모여 앉는 것을 보고 심리적 차별감은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호주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낮은 출산율, 외국인과의 혼인 양태를 볼 때 우리도 다민족·다인종·다문화가 어우러지는 사회를 위해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미 발표한 제도의 착실한 실천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보완과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의식변화가 중요하다. 다문화주의는 약자를 보호한다는 측면도 있으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볼 때 막강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온 국민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